조용한 수다쟁이💜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본문

책 읽는 시간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다정한Som 2021. 10. 9. 13:43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레딩 감옥에서 동성의 연인 앨프리드 더글러스(1870~1945)에게 쓴 편지입니다. 와일드의 전기를 쓴 비평가 리처드 엘먼은 이 글을 가리켜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하고 긴 러브레터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생애의 절정을 맞이했던 1895년(41세), 남성들과 외설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법적 최고형인 2년간의 강제 노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페터 풍케의 평전 ‘오스카 와일드’(한길사, 1999년)에 따르면 그는 옥스퍼드에 다닐 때만 해도 엄격한 이성애주의자였으며, 미모의 여성을 숱하게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런 끝에 ‘달의 여신’이라는 찬미를 바치기도 했던 콘스턴스와 결혼을 하고 두 아들도 낳았습니다. 결혼 생활의 권태와 아내와의 성격 차이가 그를 동성애로 인도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와일드의 삶과 문학에 내재한 이중성이 더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의견입니다.

와일드가 스무 살 된 옥스퍼드 대학생이자 동성연애자인 앨프리드 더글러스를 처음 만난 것은, 결혼생활 7년째에 접어든 서른일곱 살 무렵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챈 더글러스의 아버지 퀸즈베리 후작은 와일드가 다니는 클럽에 ‘당신은 남색가’라는 쪽지를 붙여 공개적인 모욕을 했고, 와일드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습니다. 그때 와일드의 친구들이 당장 소송을 취하하고 영국을 떠나 있으라고 강력히 권고했던 것처럼, 영국과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와일드의 재판은 그가 조금이라도 현명했다면 얼마든지 감옥행을 피할 수 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와일드의 무모한 만용을 비웃으며 그가 어리석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정은 그의 허세에 있지 않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심연으로부터>는 그 동안 ‘옥중기’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발췌본을 완역하고 원제까지 찾았습니다. 보통 이 책은 와일드의 참회록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느 모로나 참회와는 별 연관이 없습니다. 와일드가 레딩 감옥에서 더글러스에게 보낸 옥중 서신을 모은 이 책은, 와일드가 퀸즈베리 후작을 고소하게 된 배경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와일드를 만나기 전부터 더글러스는 아버지를 증오했고, 퀸즈베리 후작이 와일드를 모욕하는 쪽지를 클럽에 게시하자 아들은 와일드를 부추겨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와일드는 자신이 부자 사이의 역겨운 전쟁에 끼어든 것을 알았지만, 더글러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무기가 되어 주었고, 그 결과 영원할 것 같은 명성을 누리다가 영원한 불명예를 얻었고 말았습니다.

와일드는 이 책에서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연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지나온 삶을 깊이 성찰하고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드러냅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예술가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길 바랐던 오스카 와일드의 염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시인인 어머니와 유명한 의사이자 민속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유미주의 운동에 동참했고, 뛰어난 구술가이자 당대를 호위한 유미주의자로 이름을 남겼다. 와일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그가 살았던 후기 빅토리아 시대는 자못 엄격해 보이는 도덕주의, 위선적인 진지함과 엄숙함이 대중의 삶을 억누르던 시대였다. 그는 이에 반하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기질은 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외양과 작품으로도 드러났다. 와일드는 젊은 시인인 앨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동성애 사건을 일으키며 ‘제 멋’을 보여 줬다. 또한, 남자들이 검은색과 회색 옷을 걸치고 다니던 시절에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거나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기르고 단추 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녔다.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상류층과 어울렸으나 그가 내면적으로 추구한 것은 결국 ‘멋’과 ‘미(美)’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는 《행복한 왕자》(1888),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석류나무 집》(1892)을 발표했다. 또한, 와일드는 독설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탁월한 말솜씨를 밑거름 삼아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진지함의 중요성》(1895) 같은 희곡으로 극작가로서 위상을 다졌다. 1893년에는 비극 《살로메》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옥중기》를 썼다. 1897년에 출옥한 후,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1900년에 사망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예는 사후 거의 백 년이 지난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회복되었다.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오랫동안 헛된 기다림을 이어온 끝에 나는 당신과 나 모두를 위해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어. _첫 문장


“감옥에서 지내는 우리로서는, 슬퍼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는 우리는 고통이 주는 통증과 쓰라린 순간들에 대한 기억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밖에 없어.”


“고통은 우리를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야. 고통만이 유일하게 우리가 살아 있음을 의식하게 해주기 때문이지.”


“신들은 참 이상해. 우리를 벌줄 때 우리의 악덕을 그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우리 안의 선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파멸로 이끄니 말이야. 나 역시 당신과 당신 가족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끔찍한 곳에서 눈물 흘리고 있진 않았을 거야.”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는 인간의 비합리성에 기인하는 게 아니야. 비합리적인 순간이 때로는 가장 근사한 순간이 될 수도 있거든. 인생의 치명적인 실수는 인간의 논리적인 면에서 비롯되지.”


“사랑은 시장에서 거래를 하지도, 행상꾼의 저울을 사용하지도 않아. 사랑의 기쁨은 지적인 기쁨처럼 사랑 자체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지. 사랑의 목적은 사랑하는 것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고통은 하나의 긴 순간이기 때문이지. 고통은 계절처럼 나눌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린 다만 그 다양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 순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라고. 우리에게 시간은 전진하는 게 아니야. 순환할 뿐이지.”


“자신의 경험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야. 자신의 경험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입술에 거짓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죽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 지극히 적다는 것은 진정한 비극이야. 에머슨은 언젠가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행위보다 귀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지.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아.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야. 그들의 생각은 다른 누군가의 의견이고, 그들의 삶은 모방이며, 그들의 열정은 인용일 뿐이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장담하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위선적인 말일 수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전이지.”


“예술에서 좋은 의도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 형편없는 예술은 모두 좋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거든.”


“우린 가장 고귀한 자기희생의 감정들에도 비용을 지불해야만 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 감정들을 더 고귀하게 만드는 거야.”


“모든 재판은 누군가의 삶에 대한 재판이야. 모든 선고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듯이.”


난 이미 글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썼습니다. 나는 삶이 뭔지 모를 때 글을 썼지요. 이젠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물론 어떤 관점에서는, 감옥에서 나가는 날, 나는 단지 하나의 감옥에서 또다른 감옥으로 옮겨갈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네. 내게는 온 세상이 내 감방만큼 조그맣고 두려움으로 가득찬 것 같을 때가 있고 말이지.


나는 사랑의 기운이 없이는 살 수 없어.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야. 그로 인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말이지. 사람들이... 비난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게. 그는 내게 사랑을 선물해주었다고. 외로움과 오욕 속에서, 끔찍한 속물세계와 석 달간 치열하게 싸운 끝에 난 자연스럽게 그에게 돌아갔던 거야. 물론 나는 종종 불행할 거야. 하지만 난 아직 그를 사랑하고 있네. 그가 내 삶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이 그를 사랑하게 만든 거야.


난 당신한테 알아듣게 얘기했지. 우린 서로의 삶을 망치고 있고, 당신은 내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으며, 난 당신을 전혀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결별만이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하게 이성적이고 현명한 결정이라고 말이지.


나는 당연히 당신에게서 어떤 변명을 들을지, 당신이 어떤 식으로 내게 용서를 구할지 기대하고 있었지. 당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건 내가 언제나 당신을 용서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당신 마음속의 그 절대적인 믿음이 바로 당신에게서 내가 언제나 가장 좋아했던 것이고, 어쩌면 당신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몰라.


그후 끔찍한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앓아누워 있던 이틀간 당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당신 같은 사람과 단지 그냥 아는 사람으로라도 계속 가까이 지낸다는 건 내게 치욕이 되리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음을 다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제 마지막 순간이 닥쳤고, 그 순간이 내게 진정 커다란 안도감을 안겨준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앞으로 나의 예술과 삶은 모든 면에서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더 나을 것이며 더 아름다우리라는 걸 알았다고 새삼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비록 몸은 아팠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어. 당신과의 이별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내게 평화를 가져다준 거야.


신들은 참 이상해. 우리를 벌줄 때 우리의 악덕을 그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우리 안의 선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파멸로 이끄니 말이야.


나는 스스로에게 거듭 되뇌어야 해. 당신이나 당신 아버지 같은 이들은, 설사 그 수가 천배나 많아진다 하더라도, 결코 나 같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없을 거라고. 나를 파멸시킨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위대하거나 하찮은 누구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에 의해 파멸에 이를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이 말을 마음에 깊이 새길 준비가 되어 있고,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지금으로서는 내 말을 믿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신을 가차없이 비난한 게 사실이라면,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가혹한 비난을 가했는지를 생각해봐. 당신이 내게 한 짓이 잔인했다면, 내가 나 자신에게 한 짓은 훨씬 더 잔인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이런 것들과 더불어 내겐 또다른 것들이 있었어. 난 오랜 기간 이어진 무분별하고 관능적인 안락함 속으로 빠져들었지. 플라뇌르, 댄디,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즐겼던 거야. 내 주위에는 무미한 기질과 보잘것없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지. 나는 나의 천재적인 재능을 헤프게 썼고, 영원히 젊음을 낭비하는 것에 야릇한 즐거움을 느꼈어. 정상에 있는 것이 지겨워진 나는 새로운 감각들을 찾아 의도적으로 깊은 구렁 속으로 내려갔던 거야. 열정의 영역에서 퇴폐는 생각의 영역에서 역설이 내게 의미하는 것과 같았지. 욕망은 종국에는 하나의 질병이나 광기, 혹은 그 둘 다가 되고 만 거야. 난 점차 다른 이들의 삶을 소홀히 하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즐거움을 취하는 삶을 계속 이어갔어. 평범한 날의 사수한 모든 행위들이 한 인간을 형성할 수도 해체할 수도 있고, 비밀스러운 방에서 행한 것을 언젠가는 지붕 꼭대기에서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 한마디로, 난 나 자신의 주인이기를 그만둔 거야. 나는 더이상 내 영혼의 선장이 아니었고,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했지. 난 당신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허용했고, 당신 아버지가 나를 협박하도록 내버려두었어. 그리고 결국 끔찍한 나락으로 떨어졌지.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단 한 가지, 절대적인 겸손밖에 없어. 당신에게도 오직 한 가지, 절대적인 겸손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당신이 이곳 먼지 속으로 걸어들어와 내 곁에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

내가 감방에서 썩은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어. 그사이 내 마음속에는 미칠 것 같은 절망감이 몰려왔고, 난 봐주기조차 힘든 비통함에 빠져들었지. 끔찍하고 무력한 분노, 씁쓸함과 경멸, 큰 소리로 울게 만드는 고뇌,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비참함과 침묵하는 슬픔을 모두 느꼈지. 난 고통의 모든 방식을 거쳐온 거야. 워즈워스가 무슨 의미로 이런 말을 했는지 워즈워스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만큼.

고통은 영구적이고, 모호하고, 어두우며

무한성을 띠고 있다.

(•••)

지금 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실제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아주 잘 알 것 같아.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떤 외부의 제재나 지시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난 그런 것들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난 지금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야. 자기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어. 나의 본질은 자기실현의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어. 난 지금 오직 그 생각뿐이야. 그러기 위해 내가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당신에 대한 모든 씁쓸한 감정으로부터 나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거야.


때로는 내가 명성과 악명은 한 걸음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그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생각이 들어. 어쩌면 한 걸음 차이도 안 될지 모르지만.

그런데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 삶에 관해 모두 알고 있다는-내 삶의 별스러운 행각이 이어지는 한-사실 속에서 내게 좋은 점을 찾아낼 수도 있게 되었어. 그 사실은 내게 다시금 예술가로서의 나 자신을 확고히 할 필요성을 강요할 것이기 때문이야. 그것도 되도록 빠른 시간에. 내가 만약 다시 한번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다면, 난 악의에서 독을, 비겁함에서 비웃음을, 사람들의 혀에서 경멸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삶이 내게 문제가 되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면, 나 역시 삶에 문제가 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고, 그들 자신과 나에 관한 어떤 판단을 내려야만 하기 때문이지. 물론 지금 내가 특정한 개인들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간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유일한 사람들은 예술가들과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과,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내게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해.


누군가에게 그가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어


'한순간만 머무르는 즐거움'의 청동 조각상으로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슬픔`의 청동조각상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을 그린 산문시에서는 이모든것이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지....삶의 매 순간마다 우린 과거의 자신인 것만큼 미래의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지


그러자 강물이 대답했어요. ˝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은 , 그가 내 위로 몸을 숙일때마다 그의 눈속에 비친 내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내가 이야기로 밖에 생각할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조각가는 자신의 생각을 대리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그는 대리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세상에는 두종류의 예술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답을 제시하는 예술가이고 다른 하나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 입니다...... 답이 제시되고 아주 오랜시간이 지난 뒤에야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