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수다쟁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본문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의 다른 유명 작가, 예를 들면 예이츠나 버나드 쇼 등과 마찬가지로 경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유일한 장편소설로, 평생 그가 추구했던 유미주의를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됩니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예술 창조의 과정은 육체와 영혼의 조화가 이루어진 이상적인 자아 혹은 인물을 예술 작품 속에 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젊음과 미를 얻는 대가로 자신의 영혼을 판다'는 서구 문학의 오래된 전통에 대해 오스카 와일드가 이 작품에서 새롭게 부여한 것은, 결과적으로 "예술과 삶의 관계" 입니다.
화가인 바질 홀워드가 잘생긴 젊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그리고, 그 그림을 보고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홀딱 반한 도리언은 초상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내주겠다는 소원을 말하게 됩니다. 그 소원대로 자신은 아름다움과 젊음을 그대로 간직한 반면 초상화는 자기 탐닉과 타락에 빠진 사악한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 갑니다. 결국 초상화를 그린 바질에게 사악한 모습으로 변한 초상화를 보여 준 도리언은 증오심에 불타 화가인 바질을 죽이고, 결국엔 죄책감에 사로잡혀 초상화를 없애려고 화가를 살해한 칼로 초상화를 찌르지만 초상화는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오히려 그가 늙어 찌그러진 채 가슴에 칼을 맞고 쓰러진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년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시인인 어머니와 유명한 의사이자 민속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트리니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아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유미주의 운동에 동참했고, 뛰어난 구술가이자 당대를 호위한 유미주의자로 이름을 남겼다. 와일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에서 활동했다. 그가 살았던 후기 빅토리아 시대는 자못 엄격해 보이는 도덕주의, 위선적인 진지함과 엄숙함이 대중의 삶을 억누르던 시대였다. 그는 이에 반하는 내면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찾고자 했다. 이러한 기질은 그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외양과 작품으로도 드러났다. 와일드는 젊은 시인인 앨프레드 더글러스 경과의 동성애 사건을 일으키며 ‘제 멋’을 보여 줬다. 또한, 남자들이 검은색과 회색 옷을 걸치고 다니던 시절에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거나 머리는 치렁치렁 길게 기르고 단추 구멍에는 초록색 꽃을 꽂고 다녔다. 표면적으로는 영국의 상류층과 어울렸으나 그가 내면적으로 추구한 것은 결국 ‘멋’과 ‘미(美)’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는 《행복한 왕자》(1888),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 《석류나무 집》(1892)을 발표했다. 또한, 와일드는 독설과 위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탁월한 말솜씨를 밑거름 삼아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1892), 《진지함의 중요성》(1895) 같은 희곡으로 극작가로서 위상을 다졌다. 1893년에는 비극 《살로메》를 프랑스어로 출간했다. 1895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2년 동안 레딩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옥중기》를 썼다. 1897년에 출옥한 후,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1900년에 사망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명예는 사후 거의 백 년이 지난 1998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오스카 와일드와의 대화’라는 제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회복되었다. 이후 그의 삶과 문학 세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짙은 장미꽃 향기가 코를 찌르는 화실이었다. _첫 문장
아름다운 것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타락한 사람이다. 이건 잘못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은 오롯이 아름다움만을 의미한다.
도덕적인 책이나 부도덕한 책은 없다. 잘 쓴 책, 혹은 잘 쓰지 못한 책, 이 둘 중 하나다. 그뿐이다. p.7
「가장 멋진 작품이야, 바질. 네가 그린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야.」 헨리 경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작품을 내년에 반드시 그로브너 갤러리에 보내야 해. (……)」
「아무 데도 안 보낼 거야.」 그는 고개를 뒤로 던지듯 젖혔다.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닐 때 고개를 젖히는 그의 이 별난 행동을 볼 때마다 친구들은 재미있다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안 보내. 어디가 됐든 안 보내.」 p.12-13
사랑에 충실한 사람은 사랑의 사소한 면밖에 알지 못해. 사랑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라야 사랑의 비극이 무엇인지 아는 거라고. p.28
청춘이라는 게 우리가 지니고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것이니까. p.40
「그건 당신이 멋진 청춘을 지녔기 때문이지요. 청춘이라는 게 우리가 지니고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단 하나의 것이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헨리 경.」
「물론 지금이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지요. 그러나 언젠가 당신이 늙어 주름살도 패고 추해지면, 생각이 당신 이마에 주름살로 낙인을 찍고 열정이 당신 입술을 섬뜩한 불길로 지질 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느끼게 될 거요. 소름 끼치도록 느끼게 될 겁니다. 지금이야 어딜 가더라도 당신의 매력으로 온 세상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앞으로도 계속 그런 식으로 될까요……? 그레이 씨,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소. 그렇게 인상 쓰지 마시오, 그 잘생긴 얼굴에. 미(美)는 천재성의 한 형태지요. 실제로는 천재성보다 더 지고한 것입니다. 미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미라는 것은 햇빛이나 봄날, 혹은 우릭 달이라 부르는 은빛 조개가 검은 물 위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과 같이 세상의 위대한 사실들 가운데 하나요. 의심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나름의 신성한 주권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지요.(……)」 p.40-41
젊을 때 당신의 젊음을 깨달으시오. 쓸데없는 것에 귀 기울이거나 희망 없는 실패를 만회하려 발버둥치거나, 아니면 무지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저속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을 내주면서 당신의 황금 시절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시오. 그 모든 것은 다 우리 시대의 감상적인 목적이고 그릇된 이상에 불과하고. 당신의 삶을 사시오! p.42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도리언 그레이가 자기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슬픈가!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6월의 오늘보다 더 늙지 않을 게 분명한데…….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 그럴 수만 있다면 --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p.47
「얘, 그것도 젊었을 때 얘기지. 공작부인이 대답했다. 나처렴 나이 들어 얼굴 빨개지면 그건 나쁜 신호야. 아! 헨리경, 어떻게 하면 다시 젊어지는지 좀 가르쳐 주겠나?」그는 잠시 생각했다. 「공작부인, 혹시 옛날에 저지른 잘못가운데 큰 잘못, 뭐 기억나시는 것 없어요? 그는 건너편의 공작부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무 많아서 탈이지.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 잘못을 다시 저지르세요.」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말했다. 「다시 젊어지려면 옛날의 잘못을 반복하는 수박에 없어요.」「마음에 쏙 드는 말이로구나!」 그녀가 좋다고 소리쳤다.
실행에 옮겨야겠어..
「위험한 말이오!」 토머스 경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나온말이었다. 애거서 부인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내심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스킨 씨는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럴지 몰라요. 헨리 경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삶의 위대한 비밀 가운데 하나랍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살며시 다가오는 섬뜩한 상식 때문에 죽음을 당해요. 그리고 사람은 유일하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만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 법이죠. 그리고 나중에 그걸 깨닫기는 하는데, 그땐 이미 때가 늦었지요.」 p.69
「도리언, 밀집 빛깔 머리칼을 지닌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게.」 헨리 경은 담배를 몇 모금 빨고 난 뒤 심드렁하니 말을 내뱉었다.
「왜요, 해리?」
「그런 여자들은 너무 감상적이야.」
「전 감상적인 사람이 좋던데.」
「절대 결혼하지 말게, 도리언. 남자는 지쳐서 결혼하는 거고, 여자는 호기심 때문에 결혼을 하지. 결국엔 둘 다 실망하게 돼.」 p.78
「당신은 제 본질이 그렇게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도리언 그레이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무슨 소리. 아주 심오하다고 생각한다네.」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이봐, 친구. 살면서 일생에 딱 한 번 사랑하는 사람들이 진짜 천박하고 세상살이를 겉만 보는 사람들이야. 그들이 말하는 충성심이니 정절이니 하는 것을 난 관습의 무기력 혹은 상상력 결여라 생각한다네. 정서적인 삶에서 충실함을 얘기하는 것은 지성의 삶을 살면서 일관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그건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라고. 충실함! 언젠가 내가 그걸 분석하고 말 걸세. 그런 태도 속에는 소유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는 거야.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주워 가도 상관없다고 여긴다면 버릴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 p.81.82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먼저 자신을 속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날 땐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끝나지. p.86
과연 우리가 심리학을 엄밀하고 확실한 하나의 학문으로 만들어 삶을 이루는 작은 샘물 하나하나를 다 밝힐 수 있는지.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잘못 이해하며, 더욱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다. p.95
「바질, 네가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도리언이 아마 그 여자와 결혼하고 말걸. 그 친구, 분명히 그러고도 남지. 사람이 누가 봐도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이는 걸 행할 때는 언제나 지극히 고귀한 동기가 있는 법이거든.」 p.119
「(……) 나는 도리언 그레이가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아 6개월 정도는 그녀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다가 갑자기 또 다른 사람에게 푹 빠져 버리게 되기를 바라. 그러면 그 친구는 아주 훌륭한 본보기가 될 거야.」
「해리, 네가 한 말, 단 한마디도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길 바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 알아. 만일 도리언 그레이의 삶이 망가진다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슬퍼할 것 아니겠나. 괜히 그런 척하지 마라.」
헨리 경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게 여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낙관주의의 바탕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공포라고. 우리는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는 거야. (……) 나는 낙관주의를 대단히 경멸해. 망가진 삶? 어느 삶이든 성장이 멈출 수는 있지만 망가지지는 않지. 자연을 훼손하고 싶으면 대대적으로 자연에 손을 대면 되는 거야. 결혼,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 세상에는 결혼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남녀 간의 결합이 많거든. 나도 그런 결합을 기꺼이 장려하겠네. (……) 」 p.121
그녀는 상처 입은 사람인 양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고, 도리언 그레이는 아름다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윤곽이 또렷한 그의 입술이 격한 경멸의 감정을 내보이는 듯 비틀어졌다. 사람은 자신이 더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내보이는 감정에 대해 늘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는 시빌 베인의 행동이 우스울 정도로 신파조로 보였다. 그녀의 눈물과 흐느낌이 오히려 그를 더욱 짜증나게 만들었다. p.141
그러나 초상화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어딘가 상처 입은 것 같은 얼굴에 잔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금색 머리칼이 이른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그 파란 눈이 그의 눈과 마주쳤다. 불현듯 한없는 연민의 정이 온몸에 엄습해 왔다.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그림 속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연민이었다. 초상화는 이미 변해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변할 것이 분명했다. 금색 머리칼은 잿빛으로 시들어 갈 것이다. 붉고 하얀 얼굴빛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가 죄를 저지를 때마다 더러운 얼룩이 생겨나 아름다움을 훼손할 것이다. p.147
그럴 때마다 그는 죄악의 흔적과 세월의 흔적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이 더 흉측한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p.201
그래서 그는 한때 향수를 연구하기도 했다. 진한 향이 나는 오일을 증류하고 동방에서 들여온 향기 나는 수지를 태워 가며 향수 제조의 비밀을 캐보기도 했다. 그는 우리 마음의 기분 가운데 감각적 삶에서 그 대응물을 찾을 수 없는 기분은없다고 생각했다. 기분과 감각적 삶의 진정한 관계를 찾기 시작한 그는 유황 속에는 사람을 신비스럽게 만드는 것이 있고, 용연향에는 사람의 정열을 자극하는 것이 있으며, 향제비꽃에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것이 있고, 사향은 우리의 뇌를 혼란스럽게 하고, 노란 꽃이 피는 챔팩나무는 상상력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p.208
그러다 어느 날 밤에는 불쑥 집을 빠져나와 블루 게이트 필즈 근처의 지저분한 곳을 돌아다니며 하루고 이틀이고 쫓겨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곤 했다.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그 초상화 앞에 앉아 때로는 그림과 자기 자신을 혐오하기도 하고, 그러나 또 어떤 때는 어느 정도는 죄악이 주는 매력이기도한 개인주의를 뿌듯해하기도 하면서 응당 자신이 짊어져야할 짐을 맡아 질 수밖에 없는 일그러진 초상을 바라보며 은근한 쾌감 속에 미소를 짓곤 했다. p.220
「나버러 부인, 부인은 절대 재혼 못 합니다.」 헨리 경이 끼어들었다.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못 할 겁니다. 여자가 재혼을 하는 이유는 첫 남편을 지독히 싫어했기 때문이거든요. 반면에 남자가 재혼을 한다면 그건 첫 마누라를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이고요. 여자들은 자신의 운을 시험하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운을 내팽겨쳐요.」
(……)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한 어느 여자하고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아! 정말 못 마리는 냉소주의자로군요!」 나버러 부인이 자기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럭스턴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
「전 남자는 미래가 있는 남자, 여자는 과거가 있는 여자가 좋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p.278-279
「그 여잔 정말 똑똑한 여자야. 여자치고 그렇게 똑똑한 여자를 못 봤어. 그걸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들이 약한 척하면서 내보이는 매력 있잖나.
그 여자에겐 그런 게 없어. 황금으로 된 형상을 귀중하게 만드는 건 진흙으로 구운 발일세. 그 여자 발이 아주 예쁘긴 한데 진흙으로 만든 발은 아니야. 하얀빛이 나는 도자기로 만든 발이라고나 할까? 뜨거운 불을 견뎌 낸 발이지. 불이 그 발을 파괴한 게 아니라 더 단단하게 만든거지. 그뇨는 온갖 시련을 다 이겨 낸 여자야.」 p.281
「그래도 난 우리 민족을 믿는다.」
「영국은 적자생존, 그래, 진취적인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을 대표하는 나라지.」
「발전이 있었잖니.」
「나는 쇠퇴가 더 마음에 드는데.」
「그럼 예술은 어때?」 그녀가 물어다.
「그건 질병이야.」
「사랑은?」
「환상.」
「종교는?」
「요즘 유행하는 믿음의 대용품.」
「너는 회의론자로구나.」
「전혀! 회의주의는 믿음의 시작이라고.」
「그럼 넌 도대체 어떤 사람이니?」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한계를 짓는 것에 불과해.」
「단서를 좀 줘봐라.」
「실은 끊어지게 마련이야. 미로에서 길을 잃고 말걸.」 p.302
하지만 아무리 이 모든 것이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도 양심이 그 무서운 환영들을 일으켜 세워 그의 눈에 보이도록 그 환영들에 형태를 부여하고 바로 그의 면전에서 움직이도록 했다고 생각하니 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밤낮으로 그가 저지른 범죄의 그림자가 조용한 구석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고, 은밀한 장소에서는 그를 조롱하고, 연회장에서는 그에게 다가와 그의 귀에 속삭이고, 잠들어 있는 그를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으로 깨운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멀스멀 파고들자 그는 두려움에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고, 방 안 공기도 갑자기싸늘해지는 것 같았다. p.309
「세상이 우리 둘 다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때가 있었지만 그럴 때도 세상은 늘 자네를 숭배했다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걸세. 자네는 이 시대가 찾고 있는 그런 유형의 존재야. 그리고 찾아낸 것이 오히려 두려운, 그런 존재야. 난 자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조각도 안 하고, 그림도 안 그리고, 자네 자신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인생이 자네의 예술이었네. 자네는 스스로를 음악에 맞췄어. 자네가 지낸 나날이 자네의 소네트였네.」 p.334
「하지만 당신은 예전에 책으로 저를 망친 적이 있어요. 전 결코 그 일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해리, 약속해 주세요. 다시는 그 책을 어느 누구한테도 빌려 주지 않겠다고요. 나쁜 영향을 끼칠 책입니다.」
「자네 드디어 설교를 하려고 하는구먼. 이러다가 자네 좀 있으면 개종한 사람처럼, 부흥 전도사처럼, 사람들한테 자네는 이미 신물이 난 그런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돌아다니는 것 아니야? 물론 자네는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는 친구라 그렇게는 하지 않겠지만. 그리고 그래 봤자 소용도 없어. 지금의 자네와 나는 바로 지금 모습 그대로고, 미래엔 미래의 우리 모습 그대로일 걸세. 책 때문에 해를 입었다고 했는데, 세상에 그런 책은 없네. 예술이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야. 오히려 행동하려는 욕망을 없애 주지. 뛰어난 불모성, 바로 그거야. 세상이 부도덕한 책이라고 말하는 책은 사실 세상의 더러움을 보여 주는 책이라고. 그뿐이야.」 p.335
사람이 인생을 예술적으로 다루다보면 자기 뇌가 바로 심장이 되는걸세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자기의 영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거든요.
우리가 행복하면 늘 선할 수 있지만 반대로 우리가 선하다고 늘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어
과거의 한 가지 매력은 그게 지나간 일이라는 데 있는 거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좋게 여기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낙관주의의 바탕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공포라고, 우리는 우리 이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고 믿기 때문에 관대해질 수 있는 거야. 우리가 은행가에게찬사를 보내는 것은 당좌 차월을 받아 낼 속셈이고, 노상강도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 주머니가 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한 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야. 나는 낙관주의를 대단히 경멸해. 망가진 삶? 어느 삶이든 성장이 멈출 수는 있지만 망가지지는 않지. 자연을 훼손하고 싶으면 대대적으로 자연에 손을 대면 되는 거야. 결혼,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 세상에는 결혼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남녀 간의 결합이 많거든. 나는 그런 결합을 기꺼이 장려하겠네. 사람의 인기를 끌 만한 그런 매력을 지닌 결합들이지.
그녀가 마지막 연기를 한 그날 밤,그렇게 형편없는 연기를 한 이유는 사랑의 실체를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사랑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줄리엣이 그랬듯이 죽음을 택한 거예요.
그가 간절한 기도로 그토록 원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그를 멸망케 했다. p.339
방 안으로 들어선 그들의 눈에 벽에 걸려 있는 눈부실 정도로 멋진 초상화 하나가 들어왔다. 그들 주인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였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젊은 주인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한 사람이 쓰러져 죽어 있었다. 야회복을 입은 그의 가슴에 칼이 꽃혀 있었다. 찌글찌글 늙고 주름살 늘어진 흉측한 얼굴이었다. 그들은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 사람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가 누군지 알게되었다. p.344
그 사람이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살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_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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