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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발제]기사단장 죽이기,무라카미 하루키

다정한Som 2017. 8. 11. 08:03

1. 기사단장의 상징

-기사단장 죽이기 상징이 모든 분이 의견이 조금씩 달라서 흥미롭습니다. 끝없는 감사님의 아버지나 (포괄적 의미) 오싹님의 무력해진 나, 골드마마님의 내면의 부정적 측면 모두 설득력이 있네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풀기는 주인공의 아버지 이야기가 너무 안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본래의 나, 내면의 긍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없애야 하는 건 뭘까  생각했어요.

-세대교체를 의미하는것 같아요. 과거사청산 쪽으로 봤어요. 기성세대를 넘어서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키는..그게 세대교체, 과거청산과도 사회문화적으로는 일치하고요.

-왜 기사단장을 죽여야 하는데...내가 죽이고 싶은 기사단장이 있나 열심히 생각해 봤는데 없고요. 

-저는 어릴적 꿈이 소설가였는데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쓰고싶었습니다. 근데 하루키가 써버린듯? 한번쯤 써보고싶던 얘기를 써요 이게 이분 소설의 매력인듯요.

-자기만의 소설을 쓰는 것을 하루키가 계속 강조하죠. 그림도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라고.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볼 수도 있겠네요.


2. 이소설 재밌나요?

-일단 재미는 있었어요. 무서웠고요. 그림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무서웠어요.

-이 소설이 왜 난 좋은가 생각해 봤는데요. 똑같은 이야기를 늘 하면서 또 새롭게 하려고 하는 시도가 좋은 것 같아요. 이래도냐? 하는 느낌...
 그림이라는 도구로 친절히 설명해주려는 시도가 좋았어요.

-하루키가 대단한게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계속하는거요. 요리로 설명하면 재료와 도구는 같은데 매번 다른 맛의 요리를 맛보게 하는...

-근데 남주의 마성같은 매력의 원동력은 뭘까요? 내 앞에 있으면 꼼꼼하게 살펴보고 싶어요. 모든 여자들이 그와 교감하려고 하고..일단 예술가는 50점은 먹고 들어갈 확률이 높죠. 거기다가 잘 생겼으면 호감도 +10 . 완전 허무하게 하기도 하고 그거 하려고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서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사람을 꿰뚫어보고 이해해주는 느낌? 유부녀 여친도 남주에게 위안을 받고요. 거울같은 남자죠. 남주가 상대방 말 따라서 반복하잖아요.

-제가 하루키 책을 이 책 밖에 안 읽었어요. 제가 상실의 시대를 안 읽은건도 선입견 때문인데....하루키가 남자들이 딱 선망할 스탈의  소설가 같아요. 책이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돈에 약하고 섹스에도 약하고 본인도 스스로 가슴에 집착한다. 이부분이 전 엄청 맘에 안 들었어요. 근데 남자들이 엄청 공감할 것 같은 이 느낌...이게 더 짜증나는거에요.

-여자들-그시간에 장을 보는 주부들을 묘사한 것이 이데아나 메타포에 대해 생각하거나 자아에 대해 생각하거나 개척할 의지도 없는 그런 생활을 하는 존재인 것 처럼 그리고 하루키는 40대 초반은 맨날 중년에 굉장히 무료한 생활을 하는 여성처럼 그런 생활을 한다고. 자아실현이라거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생각을 안하고 살진 않지 않나요. 그런 생활을 하는 것도, 자신의 환경이나 사정에 의해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가슴 사이즈도 좀 그랬어요. 가슴 사이즈로 규정되어야 할 무엇을 강조? 강요하는 느낌이라서요.

-솔직히 이책 읽고 바로 팔아야겠다는 생각하고 샀어요 근데 생각보다 재밌었어요. 여전히 소장해야할 정도는 아니지만요. 하루키팬께는 죄송요. 아님 하루키월드를 제가 덜 이해한걸수 있는것같고요. 기사단장으로 형상화해서 나온 60센티짜리 발이작은 이데아를 상상하면서 웃음이 났어요.

-너무 두꺼운 책을 2~3일 동안 읽다보니 제가 문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네요. 게다가 프랑스영화를 보고 작품성이 없다고 하면 욕먹을 것 같아 멋지다고 해야하나..이런 느낌이 일단 들어요. 그래서 뭔가 어디서부터 언급해야하나 고민중인게 더 머리도 아프네요. 일단 음악과 연관진 내용들을 읽으니 제가 음악적인 지식이 좀 더 있었다면 재미있게 읽혔을까? 내가 좀더 자유로운 영혼이라면 빠져들었을까? 중간 중간 무언가 크게 문제시 될 것처럼 다음을 기대하고 읽다가.. 제가 최근에 추리소설을 넘 몰입했는지..이 정도로 뭘? 이런 시시함도 사실 느꼈어요. 또 중간 중간 나왔던 내용을 다시 한번 집어줄때는 작가에게 감사하다는 맘도 들었으나 이렇게 꼭 늘려서 이야기를 꼽씹게 했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전 1Q84 는 정말 몰입해서 읽었고, 작가의 상상의 나래에 저도 함께 이 곳 저 곳을 다녔던 기억이 넘 좋아서 살짝쿵 기대했으나 아직까진 실망이 다소 큽니다. 그래서 발제 주신것에 대해 좀 더 오늘 저녁까지 시간을 주시면 정리해 나가볼께요. 그냥 내 무식함의 끝이 이 책을 제대로 못 이해하는건지.. 복잡한 심경도 드네요.

-제 답답함이 어쩜 그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메세지를 마음껏 발산하지 못하는것일까? 전쟁이 주는 사회나 개인의 어두운 면을 아마다 도모히코가 자신만의 공간에 보관하고 있듯이 그도 자신만의 방에 숨기고 우리에겐 메타포로 알려주는걸까요? 이데아란 세계로 우린 모두 같은 사실을 각자의 공간에서 느끼고 있으나 그걸 표현하냐 안하냐는 의식의 차이이지 모두가 함께 자신만의 방에서 생각하고 있다... 종소리를 울려야반응하나 그 조차도 인식하고 살지 않음 묻어가며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소설을 읽고 받아들이는건 정말 개인의 취향인 것 같아요. 전 하루키 소설 단편까지 거의다 봤는데 대중의 취향과 내가 받는 느낌은 정말 다르다고 매번 느껴요. 개인적으론 양을 쫓는 모험이 제일 좋고 사실 하루키는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아요. 소설쓰는 하루키와 에세이 쓰는 하루키는 다른 사람 같아요.

-중간중간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준다는 그부분요. 저는 읽으면서 이전의 한국드라마 생각이 났어요. 요즘은 덜하지만 인물 회상씬에서 지난 스토리를 유치하리만큼 자세히 또 보여주자나요. 그런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하루키가 정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게 있나 싶어요 독자의 다양한 해석말고요.

-저는 그 하루키의 하고 싶은 말이 이데아와 메타포가 아닌가 싶어서 생각하고 또 하고 있어요. 사실 저도 에세이가 소설보다 좋다는 입장인데 하루키가 정말 하고 싶은말은 장편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루키소설은 현실과 병행이 잘안되어요. 하루키가 장편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것같은..저도 동감합니다. 하기 껄끄러운 문제를 은유적으로 말하는 거 같아요. 언더그라운드 같은 책을 쓰신거 보면 사회문제와 연관된 개인의 이면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것 같구요.

-하루키가 대단하긴 한건요. 정말 책을 읽지 않던 울 친정오빠가 '노르웨이 숲' 을 사서 자기방에 꼽아놨더라구요. 그러면서 제게 꼭 읽어보라고... 그때가 20년전인데 아직까지도 작품활동을 하고 이슈화가 되면서 작가로서 생명선을 유지하는 것은 박수쳐드리고 싶어요. 이 기회에 '미나토 가나에'에서 잠시 빠져나와 하루키 예전 소설들 다시 한번 읽어봐야하나 싶네요.

-하루키는 시대의 어두운 면을 숨기지 않고 정면으로 화두로 던지는 것 같아요. 다만 소설적 재미를 위해 다양한 메타포를 보여주고.. 문제를 던지며 독자에게 스스로 답을 찾으라 하고요. 근데 답 못 찾고 헤맬까봐 친절하게 반복 설명 해주고요. 가치평가는 본인의 입으로 대놓고 하진 않지만 문제는 계속 던지는 거죠. 어제 1Q84에서 이 문장 봤는데 하루키 자세 같았어요. 체호프는 말했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라고. 대단한 명언이다.

-좋은 사람같아요. 책을 읽다보면 그런 느낌 땜에 거부할 수가 없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결말이 좋아요. 멘시키 파워가 희석되서 흐지부지 된 건 아쉽지만요.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빛(?) 을 향해 나가는 모습 같은 게 좋더라고요.

-이틀동안 맘조리며 혹여나 어떤 사건으로 죽거나 다치거나 맘 상하는 사람이 생기는 불행이 몰려 올까봐 긴장하고 있다가.. 자신의 아이인지도 모를 자녀를 키우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안도감을 느껴서 아침엔 맥이 빠졌는지도 모르겠어요. 늦게 들어온 아이 걱정하다가 집에 들어오면 아무일도 없음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화부터나는 심정이랄까요? 4차혁명과 연결도 넘 와닿네요. 어쩜 우리는 한동안 우리 안에 가장 중요한 무엇을 찾기보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쫓아 길을 헤맸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은 내가 나를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려는 용기가 서야지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는 주인공 남자캐릭터가 넘 좋았어요. 안정되어 보이고 침묵할 줄 알고 참을성도 있구요. 무엇보다 유즈를 그리워하며 진짜 사랑하는 그 느낌이 그에게 편안한 날들만 오기를 기도했답니다. 제목에서 오는 왠지 피를 볼 것 같음과 달리 기사단장의 의협심 또한 감동이었구요. 처음엔 다소 무서운 존재일꺼라 생각하고 내게도 만약..이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나 나중엔 내게도 기사단장과 같은 이데아나 영혼의 대화가 가능한 존재가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더라구요.

-시작은 신비로웠어요. 시작할때 얼굴없는 남자가 초상화 그려달라고 하자나요.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봤는데 연결을 못했어요. 펭귄도..얼굴도 없는데 초상화 그리라고 하는게 내면을 끌어낼 줄 아는 예술가의 세계를 갖추어라. 저는 또 초상화 그려달라고 올 줄알았어요 마지막에. 처음과 마지막에 보면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꼭 모델을 보고 있을 필요없다고 하고 딸에게 쓰나미 못보게 가려주고....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고 했던가요? 초상화 그릴 때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총체적인 기억과 그사람에 대한 이해라고...그리고요, 고리를 닫는다는 거요, 그래서 기사단장을 죽이고, 구덩이에서 구출되고 나서 마리에를 만나면서 고리가 닫힌건가요? 이 세계가 닫히면 저 세계로 가는 거니.. 이 사람이 이전 세계에서 성장해서 벗어나면 그런 거 아닐까요?

-마지막에 초상화 그리는 것이 그냥 생계 유지의 수단 이상으로 승화되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다. 뭐 이런 느낌? 저도 결말이 좋았어요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내면은 어제의 나가 아니다. 딸에게 눈을 가려주는 것도요. 암튼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이데아를 죽이고 (벗어나고) 나는 새로운 나로 나아감. 이 결말로 오기 위해 너무 거창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면의 반짝이는것을 끄집어 내라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요. 그래서 다 못 주워담은 것 같아요. 에라. 모르겠다 느낌?

-이 소설을 4차 산업혁명과 연결시켜보면요. 의식의 중요성,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천착,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메타포를 가지는 것, 신체와 내면의 조화, 사고의 유연성, 이런 메시지들을 유용하게 받아들였어요. 이런게 필요하구나 하고요.


3. 하루키의 성性묘사

-소녀들은 고뇌가 있고 주인공을 어느부분 자극하는 역할로 그린거 같긴 한데 계속 가슴 사이즈 얘기해서 좀 깨긴했어요. 그게 마초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보통 사람들을 반영하는 느낌이 들어서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욕망..남자는 강한 발기력을, 여자는 볼륨있는 가슴.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저도 마초스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여자가 다 볼륨있는 가슴을 원하지는 않으니까요. 그걸 입밖으로는 지들끼리 하는 얘기를 오픈한 느낌이요.

-하루키 예전 책을 안봐서 잘 모르겠지만 남녀 차별적이라고 생각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드러내고 성에 대한 것도 남녀 평등하게 보는 것 같고 한데....그런데 머랄까 진짜 현실+ 하루키의 생각이 반영된 느낌이랄까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렇구나 이 생각이 좀 허탈한 머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차별이라거나 마초스럽다고 느끼진 않는데 그냥 유쾌하지가 않아요.

-하루키는 영혼만큼이나 육체적인 것에 열정을 쏟아요. 본인도 엄청난 운동광인데 육체가 무너지면 영혼은 온전할 수 없다는 신념이 강해요. 그래서 섹스나 가슴크기 같은 것에 부끄럽지 않게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 같아요.

-부끄럽지 않게 설명. 이해가 가네요. 하루키는 부끄럽지 않게 묘사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저는 그걸 읽으면 불편한 것? 그래서 30대 남자들이 좋아하는것 같애요.

-남자기자들이 평 쓴 거에 마리에 같은 사춘기 소녀가 처음 본 성인남자에게 가슴 고민 털어놓는게 이해 안간다 적었더라고요. 맞아요, 이해안가요 아재들의 환타지같아요. 20대 남자들은 더 노골적이고 대담함을 원한다면 30대 남자는 그정도는 아닐거 같았어요. 보통 그런 얘기하면 보통의 아재들은  시그널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모델로 자신을 그려주는 선생님이고 얘기할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혀 성적인 느낌 없이.

-하루키 남주들이 기본적으로 다 저런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마음을 여는 캐릭터. 전 상실의 시대에서 죽은 친구 애인과 섹스하면서 어찌나 따뜻하게 그려주던지요. 내가 안겨있는 느낌이랄까요. 강렬했어요. 하루키 필력은 놀랍지 않아요? 하나도 지저분한게 없어요. 정액 묻은 슬립을 빨아도 어찌나 깔끔하고 정겨운지...

-암튼 성묘사에 있어서는 장인에 가까워요. 독보적이에요. 섹스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본인도 열과 성의를 다해서 할 것 같은 느낌? 작품중에 "공을 들여" 섹스한다는 표현처럼요.

-공을 들여 섹스한다는 표현 좋으네요.

-연대에서 마광수 교수님 수업을 들었는데요. 수업 중에 즐거운 사라를 출간하고 구속되셨어요. 음란물 어쩌고로요. 성묘사가 엄청 나긴 하죠. 수업시간에도 많이 하셨어요. 근데 당시 제가 느끼기에는 이 분은 현실에서 안되니까 작품에서 대리충족 배설하는구나 느낌이 들었어요.

-사방에서 경험한 내용 조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안 그렇다면 경험도 안한 내용을 어찌 그리 자세하게 쓰시겠어요.


4. 스바루 포레스터 사내의 정체

-전 그 하룻밤요, 흰색차 남자랑. 끝까지 이해가 안가요. 목졸라 달라 그러고요. 다 안다 그러고 마지막 수해 현장에 재등장해요.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 제일 어려웠어요. 이런 느낌 영화 있는데요. 아. 영화 아니고 드라마. 암튼 악을 대표하나 정체 불명 스러운 느낌. 얼굴 없고.스바루 남자도 그런 느낌 들었어요.

-근데 스바루랑 그여자 무슨 관계죠? 사람 내면 속에 잠재되어있는 폭력적/부정적/악의 기운 성향 같은 걸까요?

-네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어. 할리웃 공포 영화 제목 같은. 난 지난 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그걸 남주에게 요구했던 여자는 사라지고 그럴수도 있었던 너를 내가 알고 있어라는 건가요.

-그 요즘 읽은 책들에 나온 단어인데요. 프롬의 네크로폴리아. 악.폭력성. 뭐 이런 것들 그런 느낌 들었어요. 내면에 통제불가능한 폭력성, 악 같이 느꼈어요. 그게 왜 폭력성이라고 생각했냐면요. 남주가 섹스 중 여자의 목을 조르잖아요. 평소의 남주라면 절대 안 할텐데. 그래서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평범한 인간도 폭력성에 휘말리는가...

-멘시키가 구덩이에 들어가 한시간후 나오겠다고 했을때, 본인을 꺼내주지 말까하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했냐고 묻죠. 결국 주인공 내면의 악을 잠깐 꺼내보이기는 한거 같애요.

-난징대학살에서 목을 자르는 것처럼요? 다시는 만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죠? 세번을 잘랐다고 했죠 너무 잔인하고 제정신으로 못살지싶어요. 동생은 난징학살의 폭력성을 끝내 못아기고 자살= 남주는 그림으로 다 발현시키고 (?) 다락방 유기 후 불타 없애짐.

-얼마전에 택시운전사 봤는데요. 저희 외가에 나이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광주때 공수부대였나..어릴 때 들어서 정확치는 않은데 현장에 있었대요. 그때 어른들이 술드시고 저는 옆에서 잠결..근데 일단 잠을 안재웠대요 며칠을. 그리고 이건 모두 저빨갱이 ㅅㄲ들 때문이라고. 제 정신이 아니도록 몰아부쳤다고 해요. 쟤들 안죽이면 네가 죽는다. 그리고 집단광기? 다들 전역후 절대 서로 연락안한다고. 이 오빠는 미국 갔고요. 안들어와요. 중간에 이혼하고 애들도,부모도 안보고 살아요. 어른 되고서야 그게 광주 얘기였구나..깨달았어요. 조카 태어나고 한국도 오가고하더니 ...정착 못하고...바람 나서 가정버리고. 서울에서부터 안재우고 안먹이고 구타 당하고 내내 그랬다나봐요. 네가 안하면 네동기가 죽는다고 때리거나 때리게하고요.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에 나오는, 집단 학살을 한 베트남전 트라우마로 평생 불안을 가지고 결혼생활 못하는 미군들 얘기도 참 무서웠어요. 가해자 같은 피해자들이죠. 일본에서도 전쟁을 반대하던 지식인들 목소리 내기 어려웠지요.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제가 어쩔 수 없었을것 같아요. 그래도 하루키가 미야자키 하야오보다는 나은듯요.

-저 고등때 읽었던 고미까와 준뻬이 <인간의 조건> 이라는 소설이 일본의 군국주의 비판하는 소설이었어요. 전쟁 반대하던 남주가 결국 죽어서 1년동안 상심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3권짜리인데 고2때 2권까지 읽고 고3 학력고사 끝나고 3권 읽었어요. 남주 죽는다는 것 알아서요.

-그렇게 반항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리셋하는 강단이 필요해요. 시스템에 기대지 않고. 하루키도 강단하면 뒤지지 않죠. 자기 까는 비평가 글 포함 자기 글 비평 하나도 읽지 않으셨다고..지금도 그러시는지 모르겠네요.


5. 이데아와 메타포

-이데아. 메타포. 현현. 전이 다 문학. 철학. 심리학. 종교학 개념이죠. 전이하는 메타포는요.

-제 경험을 이야기 해볼게요. 석사 논문을 라깡으로 문학을 분석했어요. 라깡은 무지막지 하게 어려운데요. 프로이트+소쉬르 이론이 기본이예요. 소쉬르는 언어를 기의와 기표로 분리했어요. 기의는 내용이고요. 단어의 뜻. 기표는 형식이예요. 예를 들자면 을  꽃 이라고 불러요. 꽃은 기표예요. 꽃잎으로된 어쩌고 피는 식물... 이건 기의가 돼요. 그런데 놀랍게도 라깡은 이것을 인간의 욕망에 대입시켜요. 즉,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생겨나는데 (근원적이죠. 모성분리... 프로이트) 결핍을 채우기 위해 대체물 (기표) 로 채우려고 해요. 하지만 채워지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표는 미끄러져서 다른 새로운 기표를 통해 결핍을 채우려고 해요.

-제 개인 이야기예요. 30대때 매일 꿈을 꾸었어요. 십대 때 좋아하던 남자가 매일 꿈에 나타나는 거예요. 그 애랑은 잘 되지 않았어요. 손도 못 잡아본 사이. 꿈 속에서 매일 그 남자를 만나다 보니 어느날 부터 혼란스러운 거예요. 왜 계속 그 남자 꿈을 꾸지? 그래서 지방에 있는 그 애 병원을 찾아가볼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 남자는 기표라는 사실을요. 제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그 아이로 현현되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요. 실제로서의 그 남자애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하루키 소설들도 그런게 아닐까 싶었어요.

-이중메타포는 기존의 나. 이전의 나로 끌어내리는 즉, 나의 통과의례를 방해하는 존재들 (방해물) 인 것 같아요. 한치라도 길을 잘못들면 터무니없는 곳에 다다른다고요. 그곳에 이중메타포가 도사리고 있어요. 깊은 어둠 속에 도사린 말도 못하게 고약하고 위험한 존재입니다. 라고 나오죠.

-메타포로 전이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본질을 그림으로 형상화시켜라 같아요. 메타포에 메타포가 덧씌워진 것 주객의 전도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이데아는 추상이고 관념이잖아요? 추상의 세계를 벗어나라?? 내면의 본질을 끌어내라?? 하루키가 항상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이런 거 많이 쓰잖아요.

-플라톤의 이데아는 하지만 진짜 실체잖아요. 저희가 보고 있는게 오히려 그림자라고 하는데 그 그림자의 그림자가 이중메타포일까요...그것을 실체라고 믿어버리는 것? 이중메타포는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지만, 결국 맨날 그림자를 보고 살았던 우리 입장에서는 그걸 이데아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죠 .

-기사단장=이데아 잖아요. 나는 기사단장을 찔러 죽여야만 하고요. 암튼 한단계 더 높은 예술가가 될 수 있는것. 흔히 말하는 내 안의 버려야할 것을 깨부수는 행위?이럼 이데아란 나가 넘어서야 할 것 아닌가요? 아님 이 이데아는 왜곡된 것?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아닌 것 같아서요.

-과거 시대의 이데아? 그렇게 볼 수는 없을까요? 옛 시대의 정신이 현현하는 것을 찔러죽여야 (기표의 미끄러짐?) 새로운 시대의 메타포가 가능? 멘시키 말로는 시스템이라고 하구요.

-기사단장을 죽여야 내 안에 있는 메타포가 살 수 있다. 이런 내용으로 이해되었어요. 그리고 그 메타포가 이중메타포에 의해서 길을 헤메이지 않게 조심해야한다. 안그럼 이상한 메타포로~훅 간다. 이런 건가요?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맞는 것 같아요. 갑자기 왜 책이 2권인지 이제 이해가 되고 있어요. 왜 2권이나 썼나 이해가 안되었거든요. 잘 모르겠지만 하루키는 책 쓸때에 책의 큰 그림 그리기 좋아하나봐요.


6. 예술가 소설

-이 소설을 예술에 대한, 예술가 소설로 해석하는 것도 설득력있어요. 실재(존재)하는 것을 끌어내줄 수 있는 자기만의 메타포를 갖기 위한 화가 '나'의 예술성장 투혼기 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말에 대해 과한 의미부여를 해봤는데요.
1번> 개인적 인간 차원에서의 과잉해석:
부자고 읽을 책과 들을 음악만으로도 바쁜 멘시키는 딸일지 모를 마리를 매일밤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고모와 관계를 유지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진 유즈와 재결합해 딸을 낳고 딸바보로 살아간다. 결국 본인이 추구해온 삶에도 본직적 결핍이 있다는 아쉬움. 후회.?  (아이를 갖지 않은 선택에 대한) 이거 너무 과하죠.?

2번> 인류적 차원에서의 과잉해석
인간은 DNA를 나르는 통로 역할 밖에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생명을 통해 인류의 미래에 긍정적 가능성을 갖게 된다. 2번은 특히 김영하 <아이를 찾습니다> 에서 주인공이 아이 손을 놓지 않는 거와 오버랩 되었어요.

-하루키가 1949년생, 올해로 69세예요. 그런 생각 충분히 할 것 같아요. 저는 더 나아가서 하루키도 멘시키처럼 어디선가, 그게 현실세계든 아니면 관념의  세계에서라도 자신의 혈육이 살고 성장하는 것에 대한 소망이 보였어요. 관념적으로라도 낳은 자손들이 어디선가 실제 인간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희망말이죠.

-하루키는 자신의 dna가 어딘가 관념적으로라도 이어질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하루키님, 이기적유전자 뒷편에 리처드 도킨스의 밈이론에 의하면 당신의 문화적 유전자는 90년대를 산 청춘들에게 흐르고 있어요 라고 전하고 싶어요.

-관념적으로 DNA연결. 설득력있어요. 의식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그걸 자신의 소설을 통로로 하여 그래서 읽히는 소설을 쓰시나봐요. 야하게 써서 중장년 청춘들을 꽉 붙들고 있구요.

-그럼 세련되게 일기써서 30억 버시는건가요? 스토리텔링이 탁월하잖아요...이데아, 메타포를 두권이나 풀었는데 쉽게쉽게. 유발하라리도 그렇고 하루키도 그렇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쓰는게 베스트셀러작가들의 힘 같아요.

-워낙 다독하시는게 아닐까 싶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들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소설을 통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읽을 수 있는 대중성있는 소설로 내용을 전달하는 느낌이에요. 책에 나오는 클래식들도 30대 남자들이 잘 듣는 음악들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하루키 책에 나왔다. 그래서 화재성이 되고 듣다보면 괜찮네 싶고 책도 연상되고 하면서 결국 하루키의 생각과 그와 예술관이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남는 느낌이에요. 저는 어제 이데아와 메타포 그 이야기가 머리에 계속 남아서 생각해보면서 여기서 말하는 이데아가 그럼 큰 그림 아래 여러개의 이데아이고 여러개의 메타포인가 싶었어요.

-메타포는 각자의 것이니 여러개가 많을테고요. 이데아는 시대별로?

-저는 이데아 부분이 좀 어려웠어요 메타포는 각자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것 같애요. ux디자인에서도 메타포를 업무 용어로 사용해온지 꽤됬었는데 잘못된 메타포나 통용되어온 메타포를 혁신적으로 바꿀 경우 큰 사용자 혼란이 오거든요. 예를들어 예전부터 음악을 음표라는 메타포로 사용해왔는데 신규 오픈하는 뮤직서비스에서 혁신을 담아 음표와는 전혀 상관없는 메타포를 만들었을 경우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돈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저는 주인공이 결국 유즈에게 돌아가고 상용초상화를 다시 그리게 된것은 각자의 메타포 중 서로 싱크를 맞춰야 될것들은 맞추게된 후여서라고 생각했어요.

-하루키의 대사는 어디서 본듯 하면서도, 아 그 말이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여기구나 싶게 잘 배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한 메타포를 끌어오는 걸까요? 현대사회에서 더욱 메타포의 비중이 커지는거 같네요. 하루키는 시대를 읽고 내놓은 거네요. ux디자인의 메타포의견을 듣고나니 더욱 이해됩니다. 인터넷으로 언어가 점점 기호화되고 있어요. 기표에서 미끄러진 새로운 기표는 이모티콘이 되기도 하고 디자인이 되기도, 줄임말이 되기도 하는거 같아요. 시대의 이데아는 변하고 있고 이데아를 전달하는 메타포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게 싱크를 맞추어서 이중메타포에 빠지지 말아야한다.


7. 하루키의 인물묘사

-기사중 '떡밥들이 과도했다'보니 웃음이 수거를 못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책에서 소녀의 아빠가 종교생활에 빠져 재산을 잃어가고 있다는 부분에 저 사실 뒷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잃은 재산때문에 멘시키가 물질적으로 마리에에게 도움을 주나? 살짝 기대했어요. 그런 기대를 할 줄 알고 하루키씨는 그 부분은 쏙 빼셨더라구요. 책에 나오는 멘시키처럼 넉넉한 재산으로 책 읽으며 서평과 토론을 하는 삶이면 더 없이 좋겠네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멘시키는 딸일지 모를 마리에를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을까요? 계속 훔쳐보다가, 주인공은 그걸 간파하고 그애 인생은 마리에 거라는 메시지로 미완성 그림을  마리에에게 준거겠지요.

-하루키는 사람의 나약한 부분을 잘 그려내는 것 같아요. 반면에 악랄한 사람은 잘 묘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악은 뭉뚱그려 사이비종교로 묘사하는 것 같아요. 다른 소설에서도 참 자주 등장하구요. 언더그라운드 집필의 영향인것 같아요.

-주인공 나도 그렇잖아요. 아무리 이혼수속중이라지만 유부녀와의 관계를 합리화시키는건 쉽지 않은데...책 읽다보면 별 문제 없는 내용처럼 여겨지더라구요. 그래서 첨에는 한명도 아니구 두명 머지? 이러다가 사람이 살다가 보면 저럴수도 있구나....무조건 나쁘게 보면 안되는건가. 바람이 도움이 되기도하나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서 요상했어요. 그리고 부인이 먼저 바람을 피워서 이혼하자고 하고 그럼 우리나라 같으면 머리채 잡고 죽니 사니 싸울텐데 주인공 나는 자세한 것도 안 물어보고 본인이 나간다는 것도 신선했어요. 그리고 재결합과정도 그렇고 하루키가 인간사를 재정립한다고 해야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고정관련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결말에서 각자 낳았는지 알 수 없는 자식이지만 친자처럼 여기면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 그런 것에 대해서 열린 모습을 30대 남성들이 배웠음 싶더라구요.

-그런데 얼굴 없는 남자는 무슨 의미인 것 같으세요?

-뱃사공 말하는 것이죠, 펭귄인형으로 배삯을 치르고 강을 건너가게 해준 그 뱃사공.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것에 내켜하지 않은 주인공 자신의 또 다른 내면의 소리일까요? 초상화도 괜찮은 그림의 영역이라는. 초상화 받으러 갈테니 그때 펭귄인형을 돌려주겠다 했으니 소중한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위해서는 초상화 그리기는 필수라고 느껴졌어요. 주인공도 그걸 깨달아서 전문 초상화가로 다시 발을 들여놓고 가족을 부양해요. 초상화를 그리면서 가족과 행복을 찾았다 생각되요.

-저는 조금 다른 견해에요. 제가 하루키책 이게 처음이라...틀릴 확률이 높지만...제 생각은 개성없는 인간이요. 주인공이 멘시키 초상화도 미완성이면서 먼가 일반적이지 않은 초상화고 마리에도 미완성인데.. 모두가 만족해해요. 그 이유가 본인의 특징을 매우 잘 잡아줘서, 그들의 개성이 살아있는 초상화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반적인 초상화의 개념을 깼다고 생각했어요. 첫권의 첫장면에 얼굴없는 사람의 얼굴을 그리기로 약속해서 놀라지 않고 그렸다. 그 내용 처음에 넘 특이해서 저도 책 읽으면서 왜 이부분 넣었을때 고민했거든요. 그냥 주관적인 견해상 특징없는 사람, 그래서 그냥 지나가도 기억에 나지 않을 사람이라 펭귄인형으로 표시해준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특징이 없으니까 징표를 준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얼굴없는 사람의 초상화를 주인공은 못 그렸어요. 얼굴이 없어서 그러자 얼굴없는 사내는 펭귄인형을 다시 가져가며 다음에 초상화를 그려주면 그때 인형을 돌려주겠다고 하며 돌아가요. 펭귄인형은 지키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어요. 초상화 그리기를 하면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지킬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인간 개개인에 그림자가 있듯이 모든 사회와 국가에도 그림자가 있다. 밝고 눈부신 면이 있으면 그것에 어울리는 어두운 측면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그림자에서 눈을 돌리려고 한다. 혹은 일부러 배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담을 쌓고 밖에서 오는 사람을 쫒아내더라도 혹은 역사를 편리한 대로 고쳤다고 해도 결국 자기 자신이 상처입게 된다. 그가 소설속에서 말한 '스바루 포레스터' 가 바로 그가 이 부분에 대해 독자에게 주는 메타포라 여겨집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어두운 면은 바라보지 않으려고 하는 덮어버리고 불태우면 끝일꺼라고 안도하는 사람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양심을 주인공만큼만 가져도 다행이라 여겨지네요.

-덮어버리고 눈감아 버린다고 해결되지 않지요. 강호동 나왔던 예능이였는데 거기서 복불복 게임을 하면서 '나만 아니면 돼' 남이 어찌되든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말이 저는 굉장히 거슬렸거든요. 이 말이 제가 불편해했던 이면인듯해요.

-우리 모두 교육이나 사회전반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지요. 그걸 지켜나가는 자가 손해보는 세상... 결국 적응하며 버텨내면서 내가 내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다면 스바루 포레스터와 같은 환상은 겪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저 또한 돌아보게 되네요. 누구를 불평하고 탓하면 전 스바루 포레스터와 갈은 이데아가 출현해서 제게 힘든 순간을 안겨주더라구요. 좋은 일할땐 기사단장이 왔으나 몰랐던 것일수도 있지만요.


8. 하루키의 선과 악

-기준이라는게 절대적이진 않고 일반적이진 않지만 하루키는 늘 옳지않은 것에 대한 생각이 있는것 같다고 느껴요.

-선과 악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은 일관된 기준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될지도 모르는 거야. 이런 생각이더라고요. 이게 멘시키에게 잘 반영된 것 같아요. 아주 선하지도 아주 악하지도 않은...

-하루키가 아렌트의 영향을 받은걸까요. 악(惡)'은 히틀러 같은 '악인'에 의해 기획되지만 그 '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이를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했다. 조직의 논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행위는 '충성'으로 포장되고 부당한 지시라도 빈틈없이 수행하는 태도는 '성실성'으로 포장된다. 악의 평범성 개념의 핵심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데 있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못하는 것이 아이히만에게서 보이는 '악의 참모습'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악은 생각이 없는 가운데 엄청난 일을 저지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 내용을 소설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나 잡문집에서도 그 주제를 많이 다루죠. 전 깊이 있게 생각해보진 못했지만 이 소설에서 각 사람이 가진 아픔과 약한부분을 주목했어요. 주인공의 아픈 경험인 동생때문에 아내와의 관계가 시작됐고 그 관계도 아픔이 되어요. 폐쇄공포증이 있는데 사건은 구덩이에서 시작되구요. 주변 인물도 모두 약점이 있고요. 여자아이는 가슴이 컴플렉스고요. 약점이 더 드러나면서 소설의 위기감도 높아져요. 하지만 아이도 돌아오고 가슴도 자라구요 주인공은 좁은곳을 빠져나오고 구덩이도 벗어났고 아내도 찾아요. 멘시키는 어쨌든 타인의 도움없이 딸?과 자유롭게 만날수있구요. 화가도 마음의짐을 내려놓고 떠나구요. 사건이 벌어지는 시작은 기사단장죽이기의 발견이고 해결되는 시작도 기사단장을 죽이는 것이었어요. 저는 이게 내면에 있는 어떤 오랜 믿음을 깨면서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미완성이 완성이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대로 아름답다라는 메시지가 읽혔는데 같은 맥락인듯 싶어요. p79 나는 거의 순수한 무無와 맞주하고 있었다. 클로드 드뷔시는 일찍이 오페라 작곡이 정체에 빠졌던 시기를 '나는 매일같이 무rien를 만들기만 했다'고 표현했는데, 그 여름의 나 역시 날마다 '무의 제작'에 종사했다. → 얼굴없는 사내도 나올수 있던것 같기도해요.

-시대마다 이데아(관념)가 있고 그 과거의 이데아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메타포가 전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단장 죽이기라고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 과거의 이데아를 벗어나야 새로운 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깊이 생각해봐야겠어요. 악인이 기획한 그 악함이 평범한 사람의 약함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영화 원더우먼에서 "인간의 선은 너무 쉽게 타락한다"라고 했어요. 아마도 쉽게 타락하는 이유가 말씀대로 약하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9. 하루키와 노벨상

-저는 살짝 회의적이에요. 재미있기는 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이거든요.

-전 탈것 같아요....20프로 부족한 밥 딜런도 탔잖아요. 이번에 못타도 담엔 타지 않을까요? 죽기전에 탈것 같아요.

-밥딜런 얘기하시니 꼭 타야할것 같아요.

-미국 초기정착기에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스스로 각성한 후 자유를 얻었잖아요. 하루키도 좀 더 과감하게 한번만 더 용기내어 전 세계에게 메다포로 메세지를 주려 애쓰지말고 각성할 수 있는 직접적 메세지를 그의 특유의 묘사로 써준다면 노벨문학상 받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인 자신들에게서 각성의 메세지가 나오는 그 날을 꿈꿔봅니다. 일본 우익은 이 소설에 난징 대학살과 그 피해가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하루키를 맹비난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그동안 줄곧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해 왔다. 이런 작가적 양심이 면면히 이어진다면 언젠가 일본판 ‘주홍글씨’를 볼 날이 오지 않을까.

-일본 우익들도 참 징한 놈들인듯 싶네요. 그걸 갖고 비난이라니. 사실 하루키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밝히듯 전체주의적, 위계적 일본사회에서 훨씬 개인적인 길을 걷긴 하죠. 미울거예요. 난징대학살 장면도 분량으로 따지면 적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요. 하루키의 캐릭터들도 하루키도 쬐끔만 더(많이는 말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주홍글씨 저자 호손의 이야기 재미있네요. 문학으로 승화하다니 주홍글씨 읽어보고 싶네요.“신이 너희 가문에 저주를 내릴 것이다.”이런 소리 들었다면 저역시 굉장히 무섭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