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수다쟁이💜
[온라인 토론] 발제: 설이, 심윤경 (5/21) 본문
설이저자심윤경출판한겨레출판사발매2019.01.28.
성장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심윤경 작가가 17년 만에 펴내는 두 번째 성장소설이자 일곱 번째 장편 소설이 『설이』입니다.
책 소개 말씀처럼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많이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SKY 캐슬연출조현탁출연염정아, 이태란, 윤세아, 오나라, 정준호, 최원영, 조재윤, 김병철, 김서형, 정애리, 송민형, 김정난, 이현진, 이지원, 권화운, 이동민, 찬희방송2018, JTBC
나는 동구의 희생과 사랑을 칭송했지만 그 아이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읽은 나의 독자들에게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아이들은 묵묵히 자기 인생조차 내걸어야 한다고 동구처럼 그래야 마땅하다고 말해버린 것 아닌가. _‘작가의 말’ 중에서
온라인 토론 발제: 설이, 심윤경
1. 주제의 선명성에도 불구하고 인물 (설이, 곽은태 선생님, 시현이 등)의 작위성과 비현실성이 두드러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셨나요?
[클라우디아] '하필이면' 시현이와 같은 반이 되고, 짝이 되고, 시현이의 집으로 가게 된다는 것은 조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곽은태 선생님의 모습은 <부모>의 역할이 사회적 역할보다도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점에서 측은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설이도 부모가 되어보면 지금과는 생각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사*] SF 소설처럼 황당무계한 것도 읽는데 이쯤이야. 얻을 것만 얻어 가자는 마음으로 읽었다. 다큐가 아니라 소설이니까 이해 못 해줄 것도 없다 여겼다.
[누구시키*] 설이가....
혼자서 공부해서 천재성을 발휘해 다른 학교 전학과 더불어 영재학교에도 합격한 부분..
무엇보다도.. 6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어른의 심리를 읽고 그에 따라 그 상황을 대처하는 모습이...
좀 소름이 끼쳤습니다. (특히나 이모의 심리 행동을 정확하게 읽고 그에따라 심술?부리는 모습...6학년이라기에는 사악?하게 느껴졌음)
[맴*] 곽은태 선생님이 자수성가한 동네(?) 의사로서 그리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책에 드러나지 않게 부부가 합심하여 재테크에 성공하여 부동산이나 주식 대박을 터뜨렸을 수도 있으니까요. 현실적으로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소설로서 주어진 설정에 크게 거부감 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갔습니다. 판타지나 환상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에 작위성과 비현실성은 신경이 안 쓰였을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 물리법칙이나 현재까지의 기술발전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 한 저는 사람의 캐릭터나 이야기의 흐름에 관해서는 실제로도 어떤 인물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연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저는 현실에서는 시현이보다 설이 이모 같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지 않나 생각했어요.
[골드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조금씩 곽은태 선생님과 같은 모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얼굴일때는 바르고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에 가깝게 행동하려 노력하고, 가족앞에서는 가면을 벗지요. 그의 직업상 그 두 얼굴의 간극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따뜻한 인간미까지 갖춘 완벽한 의사의 모습과 못마땅한 아들을 미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책의 전개와 함께 성장한 설이와 시현이에 비하여 후반부에서도 여전히 꽉 막힌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그의 말처럼 아이들은 좋아하는 일을 많이해야 행복한데 말입니다. 설이의 경우 가장 작위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현이의 경우, 그 아이의 고통과 번민이 좀더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당*]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이나 거짓에 가두어두면 안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는 와닿았습니다. 그러나 인물들에 공감이 가지 않아 이야기 전개를 자연스럽게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설이의 마음으로 따라가기에는 설이가 너무 특출난 인물이라 괴리감이 들었습니다. 이모는 이랬다저랬다 하고, 시현이는 캐릭터가 일관되지 않았고, 시현 엄마는 전형성만 띄었습니다. 한명만 꼽으라면 곽은태 선생님에 조금 마음이 가더라구요. 에피소드가 가장 제 현실에 와닿았습니다.
[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주제를 제시하는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가 다소 자극적이라는 생각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설이라는 굉장히 흡인력 강한 인물을 내세워서 이야기를 따라갔지만 왠지 내내 설이에게 휘둘리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설이가 워낙 압도적으로 형상화되어서 그런지 나머지 사람들은 또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요. 곽은태 선생님은 현실감이 없게 느껴지고, 시현이의 심리 묘사가 적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이야기 전개상 설이가 곽은태 선생님의 집에 가서 살게 되어야 하겠지만 개연성면에서는 아쉬웠습니다.
[찐*] 리얼리티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어 작품에 몰입하기 어려웠습니다. 전체적인 주제의식에 대해 이해가 안되는 바는 아니었지만, 작가가 등장인물이나 배경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현장 조사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보육원-입양-파양의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국내 최고 수준의 사립초등학교의 교사진, 커리큘럼, 학부모 분위기, 자수성가한 동네 병원 의사 아버지를 둔 초6 남아 가정의 모습, 갑툭튀로 최고 학군지 영재반 레벨 등을 통과하는 설이의 모습 등은 아주 희소한 천재의 가능성을 열어 두더라도 실소가 나오는 정도였습니다. 현장 스케치와 인터뷰만 했더라도, 설이가 그런 위치를 점할 특별한 존재라면 다른 설명이 있었어야 조금이라도 공감을 할 수 있다고 여겨져서요. 설이 대비, 투탑은 아닌 서브 청소년 주인공 격이지만 아픔을 앓고 있는 시현이 역시 매우 표피적으로 그려져서, 다 가진 가정에서 영재는 못되고 춤만 추는 잘생긴 인싸의 괴로움의 요건에 이입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개인의 괴로움은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학교 내 핵인싸로 그려지니까 말이죠. 곽쌤과 시현엄마의 캐릭터는 더욱 그랬어요. 곽쌤 정도의 어진 분이 시현이의 어느 부분을 못참는지 알 수가 없었고, 시현엄마는 진한 화장을 한 되바라진 설이를 갑자기 딸로 들여 공부를 시키는 대로 한다는 이유로 이뻐한다는...? 더 자세히 들어가면 ㅋㅋ 자수성가 동네병원 의사쌤이 강과 숲이 보이는 48층에 거주하시며 제2롯데 바닷가재 생파와 아우디 차종으로 부러움을 받고, 설이가 올림피아드 문제를 풀며 그걸 풀었다 해서 과고 테크트리로 바로 올라서는 등, 전체적으로 인물과 배경의 현실성에 대해 스터디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들국화 향*] 첫째, 저는 시현이가 설이의 갈비뼈를 부러뜨려 학폭이 열렸다지만, 그 집으로 들어가는 설정이 제일 비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보통 전학을 가게 하거나, 돈으로 보상하는 것 같아요.
둘째, 시현이의 캐릭터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 석대 업그레이드 버전 같은 느낌이 살짝 있는데요. 좋은 학교에 다니는 비슷비슷한 성향의 또래들이(그 애들도 똑똑할 테니까요) 친구의 얼굴 털을 모두 밀어 버린 뒤, 반성문이나 벌 받는 데 시현이만 쏙 빠진 채 자기들만 벌 받을 것 같진 않아요.
셋째, 설이가 그렇게 화장을 요란하게 하고 다니는데, 공부만 잘한다는 이유로 엄마들이 대단하게 보거나 부럽게 보는 것도 비현실적으로 보여요. 그럼 불량학생이라 더 욕하지 않을까요?
2. 설이의 생일에 찾아온 시현을 보며 설이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 떠먹여 주고 싶다고.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의 부모 밑에서 자라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 장면을 보며 무엇을 느끼셨나요?
[클라우디아]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 p.177
아이에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개성을 이해하고 아이와 정서적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안내자의 역할의 경계를 분명히 하되 서로의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만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현 엄마야말로 가장 인간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몰입도 되었구요. 설이의 이모는 설이가 친자가 아니며, 설이 이모가 설이 친구들의 엄마처럼 같은 시대와 나이에 같은 육아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설이가 본인의 능력이 따라주기에 알아서, 눈치껏 잘 했기 때문에 좀더 너그러운 양육 태도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시현 엄마는 시현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 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없을 정도로 시현이에게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뒷받침을 해주고자 노력했고 그런 노력을 극단적으로 대조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설이 이모에게 오히려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까요.
[사*] 인간의 유약함과 모자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시기라 그런지 달콤한 무심함이 얼마나 달고 맛날지 저 또한 먹어보고 싶었다. 가끔 자녀에게 아는 척보단 바보스러움이 그들에게 힘이 되고, 자긍심을 갖도록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이 자신이 썩 괜찮은 사람이라 여겨야 씩씩해진다 생각한다.
[누구시키*] 관심과 무관심이라는 경계가 어떻게 규정 지어지게 되는건지..혼동이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지나친 관심으로 인한 시현의 반항적인 모습이 안타깝고 이모의 자유 방임적인 모습에 놓인 설이의 생활이 더 바람직?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듯했습니다 .
하지만...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이고 부모도 사람이기에 자식을 키우는데 시행착오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시현이 부모처럼 지나친 간섭은 좋지 않지만...이모님의 방식도 과연...달콤한 무심함이 시현이에 대한 정답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맴*]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겉으로 보기에 다 가진 건 시현이이지만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다.
[골드마*] 설이가 참 성숙하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작가가 어떤 육아를 제안하는지 알겠습니다. 공감합니다. 시현이 입장에서는 부모 중 한명은 숨쉴틈을 주는 사람이라면 참 좋겠지요.
[당*] 알파부모과 베타부모의 대조같았습니다. 모든것을 완벽하게 설정해주는 알파맘에 비해 느슨하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베타맘이 인기가 있었죠. 이 두가지의 비교가 두드러지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생각납니다. 이 소설 <설이>에서는 허술하고 허점투성이 부모 밑에서 어쩌다 두뇌가 아주 비상한 설이가 있기 때문에 특별한 것입니다. 현실은 대체로 그렇기 어렵잖아요.
[리*] 세상의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곽은태 선생님의 방식과 이모의 방식 두 가지 밖에 없을까요? 극단의 두 방식을 보여주며 이 둘 중 뭐가 더 나은거냐 라고 묻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 역시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였으며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뒤로 물러나기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아닐까요? 과보호, 과잉사랑이 넘치는 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시현의 사춘기를 바라보는 곽은태 선생님 부부의 모습은 일종의 미러링처럼 와닿아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습니다.
[찐*] 나도 사람인지라 시현네가 좋았다는 태도와, 짜장라면에 통백 제육을 신나게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추구하는 태도는 차라리 완정하지 못하고 미성숙한 설이의 치기일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부유한 생활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러움이 아니고, 내 자유도 나쁘지 않단 말이얌! 하는 모습을 그 즈음의 유치함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들국화 향*] 작가가 너무 이상적으로 그린 것은 아닌가 싶어요. 설이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시현이 입장에서 보면 과연 좋아할까요? 좋은 곳에서 살던 사람이 한 단계가 아닌 몇 단계를 내려간다는 것은 견디기 쉽지 않을 거예요. 부모가 가진 경제적 풍요나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들을 누리면서도 반항하면서 이미 자기 마음대로 생활하고 있는 데, 굳이 이모네로 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차피 속 썩고 있는 것은 부모니까요.
3. 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은 옳지 않음을 설이의 함묵증으로 보여줍니다. 함묵증으로 입을 다문 설이와 입을 열어 소리 지르고, 울면서 자기를 표현하는 설이. 어떻게 하면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잡게 해줄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묵증보다는 내 안의 것을 표현하는 설이를 응원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클라우디아]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 p.177
아이에게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의 개성을 이해하고 아이와 정서적 교감이 있는 상태에서,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안내자의 역할의 경계를 분명히 하되 서로의 이해와 공감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는, 부모만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현 엄마야말로 가장 인간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몰입도 되었구요. 설이의 이모는 설이가 친자가 아니며, 설이 이모가 설이 친구들의 엄마처럼 같은 시대와 나이에 같은 육아 경험을 공유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설이가 본인의 능력이 따라주기에 알아서, 눈치껏 잘 했기 때문에 좀더 너그러운 양육 태도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시현 엄마는 시현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 했습니다. 자신의 삶이 없을 정도로 시현이에게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뒷받침을 해주고자 노력했고 그런 노력을 극단적으로 대조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설이 이모에게 오히려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할까요.
"나는 사나운 아이다.
하고 싶은 소리를 모두 퍼붓고 그걸로도 부족하면 팔뚝에 이빨을 박아버린다."
트라우마로 오래도록 힘들어하다 어른이 된 사람들이 주인공인 책을 연속해서 읽기도 했고 전공 필수로 어쩌다 들었던 음악치료에서 들었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말>이라는 것, 밖으로 말이건 그림이건 드러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고 세상과의 <화해>의 첫걸음인 것 같습니다.
설이는 애초부터 소통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어른들의 일방적인 선택에 따라 자신의 운명과 생활이 좌지우지되는 환경에서 자랐고, 그런 성장과정에서 <무력함>이 학습됨과 동시에 생존의 노하우, 공부를 잘하는 것, 분위기를 빨리 알아채는 <눈치>를 배웠습니다.
시현 엄마는 그날그날 달랐다. 어떤 날은 와이파이가 켜지고 어떤 날은 꺼지고, 어떤 날은 스마트패드를 허락하고 어떤 날은 금지했다. 어떤 날은 웃으며 달래고, 어떤 날은 야단치며 빼앗았다. p.166
지금 누군가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고맙겠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까지 알게 된다면 상처는 나을 것이다. p.172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만 그 진짜 이유는 얼토당토않은 곳에 따로 있다. 이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그 놀라운 비밀은, 지금 내가 이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주었다. p.172
설이는 환경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면, 시현이와 같은 아이들 역시 경제적 환경과 <무력감>과 오히려 혼란과 모순을 느끼며 자라는 것 같습니다.
[사*] 설이가 곽은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도중 어른들은 함묵증이었을 때 자신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흠칫 놀랬다. 말없이 따르는 자. 이 소설이 결코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소설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민 스스로가 입을 다물고 하라는 대로 따르는 세상에서 우리는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창구가 많아졌고, 그 소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자성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불행한 것은 그 목소리가 결국 나를 살리는 길일지 죽이는 길일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입을 다물고 부모를 따르는 자녀, 입을 다물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 입을 다물고 따랐던 자녀들이 더 많이 성공의 길을 갔다 여기고, 입을 다물고 일을 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정부에 고도성장을 이뤘다 생각하는 자는 욕을 먹는다. 과연 그럴까?
입을 열 수 있는 것이 배부른 상태라고 말하고 싶진 않으나 곡소리도 못 내게 힘든 상황이 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매진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그 균형을 잡는 과정이 결국 삶의 여정이 아닐까싶다.
[누구시키*] 설이의 내면을 표출하고자 하는 바를 극대화하기 위해 함묵증이라는...장치를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설이가...내면에 많은 상처가 있어서 입을 다문것이겠지만...
곽은태 선생님을 갑자기 물고 뜯은 장면에서는..좀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나싶었네요..어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 함묵증밖에는 없었을까하는...
저의 어린모습과 비교했을때...설이는 할말을 하는 당치고 야무진 (어찌보면 독한)아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아이를 응원하면서도..어른들에게 이렇게 충격요법을 줘야했나 싶기도 했네요..
물론...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더라면..이런 극단적인 장치를 쓰지 않았을꺼라 생각합니다....
하지만...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귀담아 듣기란...쉽지 않지요..
[맴*]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세상에 길들여져 자기가 원하는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죠. 적절하고 적당한 수준의 표현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남을 상처도 줘 보고 오해도 주고받으면서 배워나가는 거겠죠. 아이들이 자신의 답답함이나 거부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할 텐데 설이는 함묵증이 아니었나 해요. 설이의 캐릭터는 설이만의 개성이 있지만 크게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르다고는 느끼지 않았고, 부딪혀가면서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골드마*] 글의 초반에 비하여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을 여는 설이가 된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당*] 함묵증은 세상의 부조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설이 또한 함묵하는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잘못 판단하거나 오해하고 어떤 경우 과대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울며 소리지르는 경우, 표현하여 속은 후련하나 주변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 있고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설이를 비롯해 우리는 이 사이에서 판단을 보류하고 천천히 고민하고 관찰하는 태도를 가지되 말을 해야할 시점에서 흥분하거나 소리지르지 않기로 해요.(ㅋㅋ).
[리*] 돌아보면 저 역시 집에서 함묵증 까지는 아니지만 입을 다물고 지내는 아이였습니다. 아이가 입을 다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설이의 함묵증도, 이를 깨뜨리고 울고 소리지르는 모습도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아이가 어느 순간에 부모에게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곽은태 선생님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간의 유년시절의 상처는 그 사람의 전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이 또한 인간이며, 그런 점에서 곽은태 선생님이 좀 더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함묵증과 반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찐*] 가족이나 사회와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청소년들, 그들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설이의 경우는, 정말 필요한 상태에서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가 발동했다기보다는, 어른들을 쥐락펴락하는 느낌을 줍니다. 물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설이라고 해서, 정말 선하게, 꼭 어른들에게 반응하고 싶은데 도저히 안되어서 어쩔 수 없는 함묵증만 가지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런 청소년만 안스럽고 그런 경우에만 어른으로서 미안함을 가질 것은 아니겠지요. 설이가 무조건적으로 어쩔 수 없는 함묵증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지는 않으나, 가장 최선의 소통을 어떻게 할지 모르는 모습은 보여진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에 원활한 소통의 방식을 체득하지 못하는 경우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또는 더욱 힘들 것 같습니다. 설이의 경우는 어떻든, 말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에 대한 본인의 의지가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든 것에 의욕을 상실한 상태가 아니며, 끊임없이 생각하고 상황을 변경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들국화 향*] 설이의 입을 통해 아이들의 심정을 잘 대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초6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논리적으로 곽 은태 선생님에게 반박하는 장면에서 시원함을 느꼈어요. 그러나 곽 선생님의 변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 현실은 아이들의 몇 마디 말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곽 은태 선생님의 말대로 남의 아이에게는 좋은 말 해 줄 수 있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내 지위와 내 부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말입니다.
4. 설이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주는 이모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라고 해서 아이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마음의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클라우디아]
사람에게도 자식을 키우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서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그분들께 나를 맡긴 건, 비록 스스로 키우지 못했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p.268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p.270
복잡한 조건법 시제 따윈 없이 나는 그렇게 사랑받았다. 별다른 감사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그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 p.271
어른들이야말로 먼저 아이들을 아이들의 개성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 제가 죽고 나서도 살아갈 다음 세대 아이들의 세상은 기성 세대와는 여러 가지로 다를 것이기에 세대에 가두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와 욕구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되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단단하게 발을 붙일 수 있는 <기준>과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사*]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주기. 자신을 투영해서 아이를 재단하지 않기. 나와 함께 한 오늘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기. 무지하지 않으면서 무지하기.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며 그늘이 되어 주며 쉬게 해줄 수 있는 여유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누구시키*] 설이를 읽으면서... 매번은 아니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과연 이 아이들이 무엇을 바라는지...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이 아이들이 편히 자기의 의사를 말할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것도 함께 노력해야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맴*] 처음에 아이가 태어나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요. 나에게 와 주어서 감사하고, 존재 자체로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고 달리 아이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요. 점점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대등해지는 것이니 나의 소유물이나 내가 휘두를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별개의 인격으로 대우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이는 맞지만 의견이 다를 때는 남처럼 설득하고 협상해야 하는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이상론). 현실은, 말 안 들으면 열 받고, 말이 안 통하면 짜증나죠.
[골드마*] 나와 분리된 한 인간으로써 아이의 삶이 어떨지 생각하곤 합니다. 시간을 길게 내다보려 노력하면 현실이 문제가 아닐때도 많더군요.
[당*] 설이가 이모에게 왜 잔소리를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모습에서 어릴적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희 엄마가 그러셨거든요. 반대로 저는 곽은태 선생님처럼 아이의 어떤 모습은 일부러 안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저는 이모의 사랑이 더 우위에 있다고 말하지 않겠씁니다. 작가의 지향점은 그러하나 곽선생님이나 시현엄마의 사랑도 그 환경에서는 노력하는 모습입니다. 이모 또한 몰라서 아이를 믿을 수 밖에 없기도 해요.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데 전제되어야 할 태도는 넓게 생각하고 자세히 관찰하는 것 같습니다. 유연하게 상황을 바라보며 수정할 점이 있으면 받아들이되, 또 아이에게 권위를 잃고 너무 허용하는 것도 안될 것 같아요.
[리*] 이 소설에서 이모의 사랑방식이 긍정적으로 그려졌지만, (그리고 그게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이게 가장 최선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이에게 세 가지 거짓말(굉장히 중요한 사건)을 하고 그게 설이를 위한 마음의 발로이긴 하지만 언젠가 밝혀지게 될 일이라는 점에서 역시 마음에 남는 문제입니다.
다만 누구나 흔들리고, 정답을 알지 못하며,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는 존재라는 점에서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사랑을 주는 것이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찐*] 이모든 곽쌤이든 시현엄마든 모두 아이에게 사랑을 줍니다. 원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주는 마음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은 분명하나, 상호관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받는 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주는 사랑 역시, 자식 입장에서 그것을 사랑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기준이 부합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너 잘되라고, 너 좋으라고 하는 일들 그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과 상호 이해 및 수용에 있어서 부모와 자식의 견해는 다를 수 있을 듯합니다. 아이가 인생 전반을 모르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부분을 경계하고 이야기 나눌 수는 있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모 자신도 불확실한 부분을 강요하는 경우를 저 자신부터 많이 봅니다. 아이의 진심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아이에게 정말 필요하고 좋은 일인지, 정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한 정확하지 않은 방법을 부모의 스타일로 추진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 그분은 조건법 문장이 아닌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할 줄 몰랐다. 하긴 시현에게도 하지 못한 일을 나에게 바랄 수는 없는 거였다. 아버지학교에서는 그분께 그런 걸 가르쳐야 할 것이다. ‘
[들국화 향*] 보상심리를 없애야 해요. “내가 이만큼 해 줬으니 너도 나에게 이만큼 갚아라.” 하는 것은 상대도 힘들고, 그것을 기대했다가 충족되지 않으면 나도 힘들어지니까요.
지난 후기)
12년 전 함박눈이 쏟아지는 새해 첫날 새벽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로 발견된 소녀 설이는 세 번의 파양을 겪은 후 위탁 부모인 '이모'와 임대주택에서 둘이 살고 있습니다. 눈이 오는 날 발견되어 설雪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예쁜 옷을 입은 아기가 음식물 쓰레기통 속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부끄러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예쁘고 아무 생각 없는 별이 되는 대신 피곤하고 부끄러운 유기 아동이 되어서 세상의 몫이 되어야 마땅할 창피함을 대신 짊어졌다. 과연 이 바보 같은 세상은 그런 생각을 해보기나 했을까? 자기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알기나 하려는지. p.26-27
12살의 나이에 벌써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겪으며 상처받고 영악해진 설이는 함묵증으로 차라리 입을 닫고 마음으로만 의문과 분노를 품은 채 세상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날카롭게 관찰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닌가?
설이를 구조한 풀잎 보육원 원장은 설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훌륭한 교육뿐이라고 하며 설이를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의 사립 초등학교인 우상 초등학교로 전학하게 합니다. 약자를 향한 교묘한 학대와 차별에 익숙한 부유층 아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이는 '사나운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살아갑니다.
나는 사나운 아이다.
하고 싶은 소리를 모두 퍼붓고 그걸로도 부족하면 팔뚝에 이빨을 박아버린다.
학교를 통해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위탁모인 늙은 ‘이모’의 단순하고 초라한 사랑과 대한민국 최상류층 학부모들의 뜨거운 교육열 사이의 선명한 대비를 경험합니다.
반석 같은 아빠의 어깨 위에서 자란 시현이 그토록 휘청거리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모의 품속에서도 쉽게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내 부모인 것을 생각하면 나는 이 세상에 둘도 없이 멍청하고 인간성은 거지 같은 쓰레기여야 옳았다. 내가 확실한 쓰레기로 살지 않으면 그들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인간이 될까 봐 걱정이었다.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 필요한 좋은 환경이란 무엇일까? 온갖 좋다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받은 아이들은 행복할까? 부모는 왜 만족하지 못할까? 다른 아이들에게는 많이 웃으라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하면서 자기 자식에게는 왜 부모가 정한 일정과 계획대로 살라고 강요할까? 왜 자기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을까?
시현 엄마는 그날그날 달랐다. 어떤 날은 와이파이가 켜지고 어떤 날은 꺼지고, 어떤 날은 스마트패드를 허락하고 어떤 날은 금지했다. 어떤 날은 웃으며 달래고, 어떤 날은 야단치며 빼앗았다.
지금 누군가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고맙겠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까지 알게 된다면 상처는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만 그 진짜 이유는 얼토당토않은 곳에 따로 있다. 이모가 나에게 가르쳐준 그 놀라운 비밀은, 지금 내가 이 고통스러운 죄책감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힘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
이상적인 아버지로서 곽은태 선생님의 집에서 지내게 된 설이는 같은 반의 시현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이해하게 됩니다. 부러워했던 가정 안에서 오히려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환상은 깨집니다. 설이는 자신의 개 '아코'와 시현의 개 '벡터'를 통해 시현을 결정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설이는 상처를 받지만, 겸손하고 소박한 이모의 사랑을 깨달으면서 설이는 자부심으로 이 땅에 당당한 두 발을 내디딜 용기를 얻습니다. 이모의 집으로 돌아온 설이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온 시현 가족과 함께 짜장라면을 끓여먹고 시현의 이모의 집에서 살게 하면 시현이도 달라질 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주고 싶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바로 그것, 허술하고 허점 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
사람에게도 자식을 키우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서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그분들께 나를 맡긴 건, 비록 스스로 키우지 못했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
복잡한 조건법 시제 따윈 없이 나는 그렇게 사랑받았다. 별다른 감사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그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
시현이는 졸업식 때 공연을 하겠다고 하고 설이도 같이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설이는 함께 춤을 추겠다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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