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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본문

책 읽는 시간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다정한Som 2020. 5. 26. 09:54

이번 달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의 국가는 미국이며, 지정 도서 중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빌러 비드 Beloved 』를 읽었습니다. 미국 문학의 대모라고 불리는 토니 모리슨은 미국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흑인문제를 노예제에서부터 현대의 인종차별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여성 노예’에 초점을 맞춰 노예제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폭력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여성이고 어머니이기 때문에 성적 억압과 모성애의 박탈까지 겪어야 했던 한 흑인 여성이 노예라는 운명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 딸을 죽인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합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흑인들의 참혹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박탈당한 모성애를 되찾은 도망 노예의 '짙고' 뒤틀린 사랑과 그로 인한 자기 파괴가 충격적입니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서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세서와 폴 디, 덴버의 시점이 교차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백성이 아니었던 자들을 내 백성이라,

사랑을 받지 못하던 자들을 사랑하는 자라 부르리라

「로마서」9:25

1부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첫문장#1부#빌러비드

1873년, 124번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인 흑인 여성 세서와 딸 덴버 두 사람 뿐입니다. 함께 살던 시어머니 베이비 석스는 사망했고 두 아들 하워드와 뷰글러는 집을 나갔습니다.

124번지는 유령이 나오는 집으로 이웃들은이 집과 이집에 사는 세서 모녀와 일체 왕래를 끊고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노예에서 도망자 노예 급기야 살인 전과자 노예 출신은 세서는 자신이 죽인 딸의 유령과 함께 살아갑니다.

네 글자를 새기는 데 십 분. 십 분을 더 허락했더라면 '디얼리'란 글자도 새길 수 있었을까? p.16

어린 딸의 비석에 새길 돈조차 없었던 세서는 비문 새기는 남자의 요구대로 해주고 장례씩에서 들은 목사의 말 '디얼리 빌러비드(참으로 사랑하는)'이라는 말 중 네 글자 <빌러비드 Beloved>를 비석에 새겼니다.

시어머니 베이비 석스가 사망하고 적막하게 살아가던 세서 모녀에게 폴 디(Paul D)가 찾아옵니다.

폴 디는 세서와 세서 남편 핼리와 농장 <스위트홈>에서 함께 생활을 했던 남자들 중 한명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그들 중 살아남아 재회한 것은 세서와 폴 디 둘 뿐입니다.

사실 도망치는 게 최선이지, 그는 생각했다. 자고로 두 다리가 멀쩡한 검둥이라면, 그걸 쓰지 않으면 안 되지. 한곳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가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붙잡히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 사내애들이 다 떠났다면 ˙˙˙˙˙˙ p.25

"스위트홈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그곳 얘기밖에 할 줄 모르죠? 그렇게 좋았으면 그냥 거기서 살지 그랬어요?"

"덴버, 어디서 함부로 지껄이는 거니?"

폴 디가 껄껄 웃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저 아이 말이 맞아, 세서. 그곳은 전혀 즐겁지도 않았고 진짜 집도 아니었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p.31

유령이 나오는 집에서 딸과 고립되어 살아가는 세서에서 폴 디는 이사를 권유하지만 세서는 거절합니다. 팔려가고, 도망치고, 돌아온 세서에게 124번가는 집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등에 나무가 자라고, 내 집에는 귀신이 나오고, 그 사이엔 품에 안은 딸아이 하나밖에 없지만, 더이상 도망은 안 쳐. 절대로. 이 세상 그 무엇도 두 번 다시 날 도망치게 하지 못해, 난 여행을 한 번 했고 푯값을 치렀어. 하지만 알아, 폴 디 가너? 그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쌌어! 내 말 듣고 있어?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단 말이야. 자, 이제 자리에 앉아서 우리랑 같이 식사를 하든지 아니면 우리를 내버려두고 떠나." p.33

폴 디 가너와 함께 일했던 노예들의 성은 모두 가너입니다. 그들 주인의 성姓이 가너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흑인들의 성은 주인의 성을 따랐고 폴의 이름 폴 디는 먼저 들어온 폴과 뒤에 들어온 폴들을 구분하는 알파벳 A-D를 붙인 것입니다.

폴디는 세서와 핼리가 결혼하기 전 친구들과 함께 세서의 선택을 기다렸으나 세서가 핼리를 선택함으로서 승복했었습니다. 그리고 28년 만에 재회한 그들은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되어 같이 살게 됩니다.

세서에게 미래는 과거의 접근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그녀와 덴버가 살고 있다고 믿는 '더 나은 삶'이란 단순히 과거의 삶이 아닌 삶이었다. 폴 디가 바로 '그 과거의 삶'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잠자리로 기어들어왔다는 것도 더 나아진 일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 혹은 그가 없다 해도 미래라는 생각 자체가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p.77

세월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단다. 세월이란 걸 믿기가 힘들다고. 어떤 순간은 떠나가. 그냥 흘러가지. 또 어떤 순간은 그냥 머물러 있고. 예전에는 그게 내 재기억 때문이라고 생각했단다. 너도 알 거야. 어떤 일은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또 어떤 일들은 절대 잊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 자리. 자리가 여전히 거기 남아 있어. 만약 집이 불타 무너져버렸다 해도, 그 장소, 그 집의 광경은 남아 있거든. 단지 내 재기억 속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어딘가에 말이야. 내 머릿속이 아니라 세상 밖 어딘가를 떠도는 광경을 내가 떠올리는 거야. 내 말은, 설사 내가 그걸 생각하지 않더라도, 심지어 내가 죽더라도, 내가 했거나 알았거나 본 일들의 광경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거지. 그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자리에." p.67

세서와 폴디는 <스위트홈>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는 유일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기억은 잠깐의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을 떠올리더라도 당시의 참혹했던 시절을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기에 고통스럽습니다.

과거의 삶과 관련된 언급치고 상처가 아닌 게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모든 것은 고통 혹은 상실이었다. 그래서 세서와 베이비 석스는 과거를 절대 입에 올릴 수 없다는 데 말없이 동의했었다. p.101

노예 흑인 여성에게는 모성도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자유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낳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도 못하고 밭에 나가야만 했습니다.

위험해, 폴 디는 생각했다. 정말 위험해. 한때 노예였던 여자가 뭔가를 저렇게나 사랑하다니, 무럭이나 위험한 짓이었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식이라면 더욱더. 그가 알기로는 그저 조금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모든 걸, 그저 조금씩만. 그래야만 사람들이 그 대상의 허리를 부러뜨리거나 포대에 처넣는다 해도, 그다음을 위한 사랑이 조금은 남아 있을 테니까. p.81

흑인 노예들의 삶은 한 자리에 정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의 마음에 따라 이러저리 팔려다니거나 빌려주거나 교환하거나 도망자가 되어 떠돌아다니거나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은 대개 자식들에게 대물림되었습니다.

움직여라. 걸어라. 도망쳐라. 훔쳐라 그리고 계속 움직여라. p.113

잠깐 동안은 모두에게 미래가 있다고 믿기 쉽다. 포자 속에 담긴 모든 것들이 실현될 거라고, 정해진 수명을 다할 거라고. 하지만 이런 확신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포자의 수명보다는 오래가겠지만. p.143

스위트홈의 마지막 남자, 알 만한 한 사람에게 그렇게 이름 붙여지고 불리던 남자는, 그걸 믿었다. 다른 네 남자도 한때 믿었지만 그들은 오래전에 떠났다. 팔려간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사라진 사람은 영영 찾을 수 없었다. 한 명은 그가 알기로 확실히 죽었고, 또 한 명은 죽었기를 바랐다. p.208

베이비 석스는 이렇게 타일렀다. "내려놓아라, 세서. 칼과 방패를. 내려놔. 내려놓아. 둘 다 내려놓아라. 강가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 더는 싸울 궁리를 하지 마라. 그 더러운 것들을 모두 내려놓아. 칼과 방패 모두."#베이비석스 p.145-146

그녀는 삶을 정화하라든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땅의 축복받은 존재라든가, 세상을 물려받을 온유한 존재라든가, 영광을 누릴 순결한 존재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은 오직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은총뿐이라고 말했다. 은총을 볼 수 없다면, 누릴 수도 없다고. p.149

덴버의 임신 중에 <스의트홈>을 탈출한 세서는 산 속에서 만난 백인 여자 에이미에게 도움을 받아 배 위에서 덴버를 낳고, 스탬프라는 남자와 엘라라는 여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해서 124번가 시어머니의 집으로 갔습니다.

"뭐라고 말하기 어렵네요. 누가 나한테 물어본다면, '아무것도 사랑하지 마라'라고 말해주겠어요."#엘라p.155-156

어차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지 못할 테니, 얼굴을 익히려는 수고도 할 필요 없었으니까. 이미 일곱 번이나 겪었다. p.230

처음 이십팔 일 간은 세서가 처음 느껴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늘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이웃들을 초대해 이름과 희로애락을 느끼는 마음 편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서는 네 아이들과 시어머니와 함께 남편 핼리 역시 이곳으로 오기를 기다렸지만 핼리는 오지 않고 새로이 농장 주인이 된 학교 선생과 그의 조카, 노예 추적자와 보안관이 세서를 잡으러 옵니다.

베이비 석스는 임종하면서 노예로 육십 년 자유인으로 십 년을 살며 배운 교훈을 세서와 덴버에게 남겼습니다.

이 세상에 불운은 없다. 백인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그놈들은 그만둘 때를 모른다." p.174

다른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그들은 사람들이 ‘삶’이라고 부르는 화냥년을 죽였다. 그들을 계속 살아가게 했으니까.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라고, 또 다른 시간의 일격이 마침내 이것을 끝낼 거라고 믿게 했으니까. 그년의 숨통이 끊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안전해질 것이다. 성공을 거둔 죄수들─삶을 병신으로 만들고 사지를 절단하고 심지어 땅에 묻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낸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거시기를 간질이는 그년의 품에 빠져 앞날을 기대하며 걱정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기억하는 다른 죄수들을 계속 주시했다. p.184

자유로운 공기하고는 한 숨도 마셔보지 못한 핼리가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이 세상에 자유처럼 좋은 게 없다는 사실을. 베이비 석스는 그게 두려웠다. p.234

베이비 석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아들 핼리는 어머니를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기 위해 일요일마다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며 어머니의 몸값을 갚았습니다. 주인인 가너 씨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자신의 노예들을 매질하거나 강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농장주들에 비해 가너 씨는 관대하고 인간적인 편이었지만 상대적인 것일 뿐 진정한 이해에 이르지 못한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 아들을 가졌고 난 만신창이가 되었죠. 내가 하늘나라로 간 후에도, 당신은 내 몸값을 치러야 한다면 내 아들을 다른 데 빌려주겠죠. p.242

힉교 선생과 일행이 124번가로 세서를 잡으러 온 날 '그일'이 벌어집니다.

"대체 저 여자는 어쩌자고 저런 짓을 하죠?" p.249

자신이 잡히면 아이들 역시 자신의 삶을 똑같이 대물림하게 될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세서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그런 삶을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고자 네 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두 아들은 부상은 입었고 막내 덴버는 마지막 순간에 구출되었지만, 셋째 빌러비드는 세서의 손에 톱으로 목이 잘려 죽습니다.

그래서 덴버는 언니의 피를 먹어가며 엄마의 젖을 빨았다. p.252

“난 아주 크고 깊고 넓었어. 두 팔을 쫙 벌리면 우리 아이들이 모두 품에 들어올 정도였지. 그렇게 넓었던 거야. 이곳에 도착한 후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더 깊어진 것 같았어. 어쩌면 켄터키에서는 제대로 사랑할 수 없었는지도 몰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도착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나는 원하기만 하면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무슨 뜻인지 알아?” (……)

그는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선택해서 사랑할 수 있는─욕망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는 곳에 도달하는 것, 그래, 그게 바로 자유였다. p.268-269

"뭐가 더 나은지 나쁜지 아는건 내 일이 아니야. 지금 어떤지를 알고, 또 내가 끔찍한 줄 아는 일로부터 그애들을 지키는 게 내 일이지. 난 그 일을 해냈어." p.272

소설 속 인물들-세서, 베이비 석스, 핼리, 폴디와 폴들, 세서의 딸 덴버와 아들들은 흑인 노예들이 피해갈 수 없었던 시련과 고통에 시달리다 망가졌습니다. 폴 디가 토하듯 '대체 왜'냐고 물을 때 이런 트라우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공유하는 민족적인 것인 동시에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기억은 좀처럼 말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 있고, 그렇게 들러붙어 있는 일들은 조심스럽게 고백되거나 편집됩니다. 줄리언 반스가 말하듯 기억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상기되어 삶을 어지럽히고 몰아붙입니다.

 

세서의 '재기억'들은 영구히 대물림될 것처럼 느껴지며 실제로도 노예들의 삶은 거의 그래왔습니다. 그나마 거기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한 이들에게는 '유령'들이 현관 앞이나 뒤뜰에 불쑥 나타나 그들이 다시 도망치거나 외딴 집이나 교회의 지하실에 숨도록 만듭니다.

스탬프는 선의로 자신이 구출시킨 아기를 위해 홀린 듯이 산딸기를 두 양동이 따서 선물하고 베이비 석스는 성대한 잔치를 베물고, 이렇게 선의로 시작한 일들이 맞물려 정해진 수순처럼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세서와 인물들이 겪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불가항력적인 것이고 파괴적이기에 읽기가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이 들었습니다.


2부

124번지는 시끄러웠다.#첫문장#2부#빌러비드

세서, 데버 그리고 폴디가 백인들의 서커스를 보고 돌아온 날, 집 앞에서 '빌러비드'라는 덴버 또래의 여자를 발견하고 같이 살면서 폴디는 결국 집을 떠나게 됩니다.

폴 디는 교회 지하실에서 지낸다. p. 305

세서는 폴 디로 인해 과거 백인에게 당했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던 것이다. p.310

한때는, 아주 오래전이지만, 그녀도 순했고 남을 잘 믿었다. 가너 부인을 믿었고 그녀의 남편도 믿었다. 속치마 안에 귀고리를 묶어서 도망쳤지만, 귀에 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백인들 중에서 그래도 몇 사람은 다르다고 믿게 해주는 귀고리였다. 학교 선생이 한 며 있으면 에이미 같은 백인도 한 명 있을 거라고. 선생의 조카들 같은 백인이 한 명 있으면 가너 씨나 보드윈 씨나 아니면 점잖게 팔꿈치를 붙잡아주고 젖을 먹일 때 고개를 돌려준 보안관 같은 사람이라도 한 명 있을 거라는 믿음. 하지만 이후 그녀는 베이비 석스의 유언을 한글자도 남김없이 다 믿게 되었고, 특별한 백인과 행운에 대한 기억들은 몽땅 묻어버렸다. p.310

덴버는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에게만 눈길을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인 빌러비드가 떠나갈까 두려워합니다.

이때였다. 빌러비드가 콧노래를 마치는 순간, 세서는 딸깍하는 소리를 떠올렸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그것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지고 고안된 자리로 딱 맞아들어가는 소리를. 컵에 담긴 우유를 흘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았으니까. 세서는 그저 고개를 돌려 빌러비드의 옆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p.288

덴버는 빌러비드가 온 날부터 아기 유령, 자신의 언니 빌러비드가 몸을 가지고 돌아온 것이라고 믿었고 세서는 이제 빌러비드가 돌아온 것을 알아차리고 '자매'에게 더큰 사랑을 주겠다고 결심합니다.

빌러비드, 내 딸. 내 거. 그애는 스스로 내게 돌아왔고, 난 아무 설명도 할 필요가 없어. 예전엔 설명할 시간이 없었어. 재빨리 저질러야 했으니까. 재빨리. 그애는 안전해야만 했고 난 그애를 안전할 곳으로 보냈어. 하지만 내 사랑은 거칠었고, 그앤 이제 돌아왔지. 난 그애가 돌아올 줄 알았어. 폴 디가 그렇게 쫓아내버렸으니 육신을 입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거야. 저세상에 있는 베이비 석스께서 도와준 게 분명해. 난 절대로 그애를 떠나보내지 않을거야. p.328

내 자식들에게는 내가 겪었던 일들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333

빌러비드는 내 언니에요. 나는 엄마의 젖과 함께 언니의 피를 삼켰죠. p.337

베이비 할머니는 당신의 자식 여덟 명이 제각각 다른 남자의 아이라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것 때문에 흑인이나 백인이나 하나같이 당신을 경멸한다고 말이죠. 노예는 쾌락을 느껴서는 안 된다. 노예의 몸은 쾌락을 느끼려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식을 많이 낳아 주인이 누구든 그를 기쁘게 해주려고있는 것이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도 쾌락을 느껴서는 안 된다. 할머니는 나한테 그런 소리는 한마디도 귀담아 듣지 말라고 하셨어요. 언제나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내 몸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죠. p.342

언니가 자기 이름의 철자를 대는 순간 깨달았고, 엄마의 귀고리에 대해 물었을 때 확신했다. p. 342

언니를 사랑해요. 정말이에요. 언니는 나랑 놀아주고 내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찾아와 내 곁에 있어주었어요. 언니는 내 거예요, 빌러비드. 그녀는 내 거예요. p.344

나는 빌러비도 그녀는 내 거야. p.344

나는 빌러비드. 그녀를 다시 잃을 수는 없어. p.348

이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 p.350

난 빌러비드, 난 두 번 다시 그녀를 놓치지 않을거야. 그녀는 내 거야. p.352

학교 선생은 흑인들의 충고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고 흑인들에게 불평이 많았다. p.361

스탬프 페이드는 폴 디에게 사과하러 왔다. p.377

어느 집이든 선택만 하면 거처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p.379

그는 세서가 일을 저질렀을 당시 그곳에 있었다고 한다. p.383

폴 디는 빌러비드 때문에 도망 나온 거라 말하며 전율을 느낀다. p.385

당시의 흑인 노예들은 이런 순환을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대를 이어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노예에서 해방된 신분이 된들 그 트라우마와 가족, 사람들과의 관계는 왜곡되고 비틀린채 살아갑니다. 덴버가 '언젠가 돌변해 망설이지 않고 나를 죽일지 모르는' 사람으로 세드를 묘사하는 대목이 섬뜩했습다. 이 순환은 이상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순환에 동참시켰습니다. 세드와 덴버가 백인 에이미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듯이 결국은 '사람들'이 답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선한 일부가 있다 해도 베이비 석스가 말하듯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너가 당시 남부의 농장주치고는 합리적인 인물이긴 하나 여전히 이 순환에서 한 역할을 맡는 인물일 뿐이었습니다. 가너 부인은 농장의 흑인들의 원치 않는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음에도 무력했습니다. 어떤 백인은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부터 흑인 직원들에 대한 태도가 매서워졌다고 했습니다. 세서의 마을 사람들은 같은 흑인이면서도 학교 선생이 찾아왔음을 일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세드와 폴 디는 같은 처지의 생존자로 재회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보지만 이런 계획은 다시 좌절되었습니다. 소설은 얼핏 과거의 상흔들이 사람에 의해 치유되고 바로잡힐 수 있는 것처럼 보여주지만 결국은그러한 연대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합니다.


3부

124번지는 조용했다. #첫문장#3부#빌러비드

2부 말미로 갈수록 난해해지더니 3부는 정말 이어서 읽어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게 느껴졌습니다.

엄마와 빌러비드는 요리 놀이, 바느질 놀이, 머리 손질과 옷 입기 놀이에 빠져서 엄마는 날마다 점점 더 늦게 출근했고 다시는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 p.390

빌리비드는 자기를 두고 떠났다고 세서를 비난했다. 세서는 용서를 빌었다. p.393

덴버는 엄마가 자기보다 나이도 많지 않은 여자애를 떠받드는 모습을 보기가 창피했다. 394

음식을 충분히 먹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p.395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했다. p.396

할머니의 가라는 음성이 들렸다. p.398

오랜만에 돌아와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p.398

이웃집을 둘러보다 레이디 존스에게로 갔다. 엄마가 몸이 안 좋다는 말에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p.404

다른 이웃들도 그녀를 도왔다. 406

빌러비드는 날로 덩치가 커지고, 세서는 날로 쪼그라들었다. p.407

빌러비드가 떠날까봐 두려웠다. p.408

세서는 자기가 한 행동이 옳았다고,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 설득하려고 애썼다. p.409

소설은 3부에서는 같은 경험과 기억을 공유한 이들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어나 조금씩 소통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화해 가운데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오, 아가. 오, 아가" 존스가 탄식했다.

덴버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땐 몰랐지만. 그토록 친절하고 다정하게 '아가'라고 불러준 그 말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삶을 그녀에게 열어주었다. p.404

고립된 집에서 덴버는 걸어나올 결심을 합니다.

덴버는 일자리를 구하기로 마음먹고, p. 410

보드윈 남매 집으로 갔다. 하인으로 있는 제이니에게 모든 일을 털어놨고, 밤에 보드윈 남매를 돌보는 일을 제안받았다. p.413

제이니는 자신이 들은 얘기를 다른 흑인 여자들에게 퍼뜨렸다. p. 415

에드워드 보드윈은 새로 일할 여자애를 구하러 124번지로 향했다.p. 422

마을 여성들이 124번지 앞에 모여 기도하는 3부의 장면은 일종의 제의처럼 느껴집니다. 집 앞을 찾아온 백인의 이미지로 트라우마가 또 한번 반복되고, 세서는 예전에 죽이고 만 딸 빌러비드에게가 아니라 백인을 향해 달려드는데, 그렇게 세서가 방향을 바꾸고 덴버와 마을 여성들이 이를 막는 것은 '왜'를 고민하고 자책한 끝에 트라우마의 정당한 책임을 고발하고, 그런 동시에 순환이 반복되지 않고 끝이 나기를 바라는 결론이 아닐까 싶다.

세서가 보드윈에게 달려 들었다.p. 427

덴버가 세서를 제지했다.p. 433

“세서.” 그가 말한다. “당신과 나, 우리에겐 어느 누구보다 많은 어제가 있어. 이젠 무엇이 됐든 내일이 필요해.”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손을 잡는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당신이 당신의 보배야, 세서. 바로 당신이.” 그의 믿음직한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잡는다. p.445

아마도 빌러비드는 지나가듯 언급되는 것처럼 감금되어 있었던 아이가 맞을 것 같습니다. 과거가 극복되었음을 말해주듯이 빌러비드는 유령처럼 사라지는데, 그것이 세서와 덴버에게 온전히 긍정적인 결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3부의 어떤 부분들은 읽기가 싫어질 정도로 난해했고, 작가는 그저 전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을 맺습니다. 아마 어떠한 공동체나 개인, 누구에게나 124번지는 있을 지도 모릅니다. 124번지의 유령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걸오나오도록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전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곧 모든 흔적이 사라지고, 발자국뿐 아니라 물과 그 물 아래 있는 것 전부가 잊힌다. 남는 건 날씨뿐이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행방이 묘연한 이들의 숨결이 아니라 처마를 스치는 바람, 혹은 너무 빨리 녹는 봄의 얼음이다. 그저 날씨뿐. 물론 키스를 바라는 아우성도 없다.

빌러비드. #마지막문장#빌러비드